한 때는 전력산업의 구원투수였던 민간발전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블랙아웃(2011년) 사태 이후 늘어난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설비를 늘린 것이 오히려 독(毒)이 됐다. 전력 용량요금 인상으로 수익성은 전보다 조금 개선됐지만 여전히 장기 전망은 불투명하다. 민간발전사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편집자]
2011년 블랙아웃 사태 이후 국내 전력산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발전용량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와 함께 전력소비 시간대를 분산시킬 수 있는 요금체계 개선 방안 등이 제시됐다.
정부는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발전설비를 확충해 전력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발전설비는 빠르게 늘어났다.
특히 복합발전이 두드러졌다. 환경문제를 동반하는 원자력과 석탄발전소는 추가 건립에 제약이 많은 반면 친환경 연료로 분류되는 LNG복합발전을 택한 민간발전사들이 주도한 때문이다.
◇ ‘정부+민간발전사’ 합작품, LNG복합발전
22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전력 설비용량은 10만4466MW(메가와트)로 집계됐다. 블랙아웃 사태 이후인 2011년 12월(5년전)과 비교하면 31.7%(2만5124MW) 증가했다.
발전설비별로 보자. 복합발전이 9244MWh(메가와트시)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성장률 측면에선 신재생에너지가 303.4%(5640MWh) 급증해 두드러졌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는 정부의 육성 정책으로 인해 성장세는 크지만 아직까지 전체 전력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복합발전설비 급증은 정부와 민간발전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정부 입장에선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신규 발전소 건립이 어려운 원자력 및 석탄화력발전 보다 친환경연료인 LNG복합발전으로 전력수요에 대응할 수 있었다.
실제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6차 전력수급계획(2013~2027년, 2013년 2월 발표) 때만 해도 정부는 석탄발전 1만740MW, LNG복합발전 5200MW 등의 설비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석탄발전인 영흥 7·8호기(1740MW)와 동부하슬라 1·2호기(MW)가 연료와 송전설비 등의 문제로 허가받지 못했다. 이러자 7차 전력수급계획에선 LNG복합발전 비중이 석탄설비를 넘어섰다.
민간발전사 입장에서도 사업 추진이 빠르고 열효율이 높은 LNG복합발전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민간발전사 관계자는 “블랙아웃 사태 이전부터 계획됐던 LNG복합발전 설비가 준공되면서 최근 몇 년간 복합발전설비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며 “정부 입장에선 민간기업을 통해 전력수요에 대비한 발전용량을 갖출 수 있고, 민간발전사들도 LNG복합발전이 환경문제 등 걸림돌이 적고 사업추진 속도가 빠르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 발전소 돌리기가 힘들다
만긴발전사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발전설비는 증가했지만 발전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전력 총발전량은 4만6964GWh(기가와트시). 5년 전 같은기간과 비교해 1.7%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 연간 전력거래량도 5조923억KWh(킬로와트시)로 2015년보다 소폭(2.8%) 증가했다.
전력수요가 정체되자 LNG복합발전소는 지금 가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발전시장은 연료비가 싼 발전기부터 가동하는 변동비 반영 발전시장(CBP) 구조다. 이달 기준 연료비 단가는 원자력 5.68원/KWh, 유연탄과 무연탄이 각각 47.16원/KWh과 68.84원/KWh이다. LNG는 96.24원/KWh이며 유류는 147.88원/KWh이다.
CBP 구조에 따라 전력수요가 발생하면 연료비 단가가 제일 싼 원자력발전소부터 가동을 시작한다. 이후 전력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 석탄발전에 이어 LNG발전, 가장 마지막으로 유류 발전소가 가동된다.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다면 LNG복합발전소가 가동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전력거래량 중 연료원별로는 원자력(1543억KWh) 및 석탄발전(2066억KWh)이 전체의 70.9%를 차지했다. LNG는 1118억KWh로 22%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거래금액 기준으로도 원자력과 석탄이 63.9%, LNG는 26.8%에 머물렀다.
LNG복합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용량은 원자력과 석탄보다 많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많지 않고, 연료가격에 따라 가동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탓에 LNG복합발전소의 가동률은 낮다. 민간발전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건립한 발전소를 두고 한숨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LNG복합발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원전 및 석탄발전설비도 늘어났고 전력수요 증가세는 둔화돼 LNG발전 이용률은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며 “지난해 LNG복합발전 평균 이용률은 약 40% 수준에 불과, 멀쩡한 발전소도 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