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서 두뇌역할을 하는 게 CPU(중앙처리장치)라면 스마트폰에선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AP는 스마트폰의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제어하는 핵심부품이다. 스마트폰을 더 얇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 그래픽과 영상, 통신 등을 담당하는 여러 반도체를 하나로 묶어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따라서 각 제조사가 내놓은 스마트폰의 AP사양을 보면 내 스마트폰이 친구들의 것보다 얼마나 똑 부러지게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삼성전자가 북미시장에 내놓은 갤럭시S8의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35'를 내장하고 있는데, 이는 전작인 갤럭시S7의 '스냅드래곤820'보다 처리성능은 10% 이상, 그래픽 성능은 21% 이상 향상된 것이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빨리, 시원하게 구동한다는 얘기다. LG전자의 G6는 이 두 제품의 중간격인 '스냅드래곤821'을 채택하고 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의 퀄컴과 애플, 대만의 미디어텍, 한국의 삼성전자 등 글로벌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분야가 AP시장이다. 앱의 구동 속도는 물론 동작과 음성인식, 가상현실 구현 등 각종 첨단기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AP시장의 40% 이상을 점하는 퀄컴이 삼성전자로부터 AP를 공급받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등은 반도체의 설계부터 생산·판매까지 모든 것을 다루지만 퀄컴은 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와 판매만 담당하는 팹리스 회사다. 그러다보니 퀄컴이 삼성전자에 AP 생산을 맡기는 게 당연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라는 자체 AP를 생산해 갤럭시S 시리즈에 탑재하는 퀄컴의 경쟁사나 다름없다. 이번에 국내에서 출시하는갤럭시S8에도 '엑시노스 9'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 입장에선 경쟁사에 핵심부품의 납품을 맡긴 셈이다.
이렇게 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이 다른 생산업체들은 넘보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가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14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 뒤 퀄컴의 전통적 거래처인 대만 TSMC를 제치고 '스냅드래곤 820'을 수주했고 지난해는 10나노 공정을 바탕으로 퀄컴의 신제품 AP인 '스냅드래곤 835'까지 거머쥐었다. 두 번 다 반도체업계 최초로 달성한 미세공정의 힘이 컸다.
반도체 기술력의 척도는 회로를 얼마나 작고 세밀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회로선의 폭이 줄어들면 웨이퍼(반도체 기판)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뽑아내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반도체는 처리속도가 빠르고 전력소모가 적은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로 꼽힌다. 얇고 비좁은 스마트폰 내부공간에 적합한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엔 한발 더 나아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양산을 시작한 10나노 1세대 공정을 업그레이드해 2세대 공정개발을 완료했다고 20일 밝혔다. 2세대 공정은 1세대에 비해 성능과 전력효율이 각각 10%, 15% 개선됐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10나노 AP 수요 증가에 대비해 올해 4분기까지 경기도 화성에 생산설비도 확충할 방침이다.
이상현 삼성전자 파운드리 마케팅팀 상무는 "10나노 1세대 공정의 성공적 양산과 고객 확보를 통해 삼성전자 10나노 공정의 우수성과 공정 리더십이 증명된 바 있다"며 "2세대 공정 역시 모바일, 컴퓨팅, 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의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