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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야기]④재주는 곰…돈은 퀄컴

  • 2017.08.21(월) 08:01

'특허만 있다면야' 퀄컴, 팹리스 장점 활용
삼성·하이닉스, 반도체 위탁생산도 담당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조300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은 퀄컴은 특허공룡으로 불린다. 2세대 이동통신(CDMA·코드분할다중접속)에 꼭 필요한 기술(표준필수특허)을 기반으로 급성장해 지금은 휴대폰 제조사들도 옴짝달싹 못하는 특허왕국을 이뤘다.

특허조사업체인 IFI클레임스에 따르면 퀄컴이 지난해 미국에서 취득한 특허는 2897건으로 IBM(8088건), 삼성전자(5518건), 캐논(3665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퀄컴의 특허출원수는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체 임직원수가 3만500명으로 삼성전자(약 32만5700명)의 10분의 1이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퀄컴이 얼마나 기술에 집착하는 회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열정이 있는 지식기업 퀄컴 이야기(데이브 목著,2007년)'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퀄컴의 임직원들, 특히 핵심기술을 쌓아가고 있는 엔지니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과학적 열의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기술 집착

 

퀄컴은 1985년 7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어윈 마크 제이콥스를 비롯해 7명이 공동으로 세운 벤처회사였다. 제이콥스도 그렇고, 그와 함께 회사 설립을 주도한 앤드류 비터비도 통신분야에서 유명한 학자 출신 경영인이다. 이들은 당시 주류였던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의 통신기술에 반기를 들고 생소했던 CDMA 기술로 이동통신시장을 휘어잡았다.

통신기술이 2세대(2G)에서 3세대(3G)를 거쳐 4세대(4G)인 LTE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퀄컴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한번 표준이 되면 그 뒤에도 좋건 싫건 그 표준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서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현재 SK텔레콤 가입자 2999만명(알뜰폰 포함) 중 LTE 가입자 비중은 73.6%에 달한다. 문제는 나머지 26.4%가 여전히 2G나 3G에 머물러있다는 점이다. 이들과도 통화를 하거나 데이터를 주고 받으려면 각각의 통신방식을 지원하는 모뎀칩(반도체)이 있어야 한다. LTE라 하더라도 LTE 방식만 지원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퀄컴은 2G·3G·4G 방식의 모뎀을 하나의 칩에 담은 멀티모드칩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 

◇ '삼성도 퀄컴 앞에선'…특허의 위력

 

다른 회사들도 이 같은 칩을 만들 순 있지만 퀄컴이 워낙 두터운 보호막을 쳐놔 진입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가령 멀티모드칩을 제조하려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때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의 허락을 받아야하는데 퀄컴은 자신들과 경쟁할 만한 칩제조사에는 특허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칩공급을 독점했다. 그러고는 칩이 필요한 휴대폰 제조사에 퀄컴칩을 공급하는 대가로 별도의 특허사용 계약을 맺도록 강제했다. 퀄컴이 아니면 안되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사이자 반도체회사인 삼성전자도 퀄컴의 특허족쇄에 묶여있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CDMA를 지원하는 모뎀칩을 생산하고 있지만 자신의 휴대폰에 장착하는 용도로 제한돼있다. 퀄컴이 다른 휴대폰 제조사에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가 오로지 삼성 제품에만 탑재돼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엑시노스는 스마트폰의 두뇌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모뎀칩을 하나로 통합한 반도체다. 퀄컴은 '스냅드래곤'이라는 통합칩이 있다.)

퀄컴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총 230억5400만달러에 이른다. 매출의 약 70%는 칩 판매로 나머지 30%는 특허 제공 대가로 돈을 벌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거둔 매출은 40억달러에 달했다.

 


◇ 퀄컴엔 공장이 없다…팹리스의 세계

 

휴대폰 분야에서의 영향력 탓에 퀄컴을 통신회사나 휴대폰 제조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퀄컴은 반도체회사다. 그것도 제조시설 하나 없이 반도체사업을 한다.

퀄컴도 과거엔 통신장비와 휴대폰을 생산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CDMA 방식의 통신장비와 휴대폰을 직접 제작하는 곳이 많지 않다보니 퀄컴이 직접 제조업에 뛰어들었는데 적자가 계속되면서 스웨덴의 에릭슨(통신장비)과 일본 교세라(휴대폰)에 해당사업을 매각했다(1999년).

퀄컴처럼 반도체를 설계하고 판매만 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라고 부른다. 별도의 제조공장(Fab)이 없다. 공장하나 짓는데 15조원 이상 들어가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팹리스는 막대한 투자부담을 덜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팹리스는 자신이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진 않지만 생산된 제품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대형마트가 판매하는 PB제품과 유사하다. 생산은 제조사가 하는데 포장지에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이름이 붙어있다. 통신용 반도체로 유명한 브로드컴이나 그래픽카드의 강자인 엔비디아 등도 모두 퀄컴과 같은 팹리스 기업이다.

◇ 파운드리·칩리스, 숨어있는 강자들

 

팹리스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만 생산하는 회사는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른다. 대만의 TSMC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회사다. 국내에선 동부하이텍이 아날로그 반도체(각종 센서칩, 전력칩 등을 말함) 분야에 강점을 지닌 파운드리 회사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설계와 생산, 판매를 모두 한다. 이런 회사를 '종합반도체회사(IDM)'라고 한다. 두 회사는 파운드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단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지만 남이 주문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농심과 오리온 등 식품업계 1~2위 업체들은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대형마트에 PB제품을 납품하지 않는데 반도체업계에선 이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퀄컴의 스냅드래곤도 삼성전자가 생산했다. 다만 차세대 스냅드래곤(7나노급)의 경우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생산물량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팹리스와 별도로 'IP(Intellectual Property) 기업'이 있다.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칩을 만들어 팔진 않는다. 그래서 '칩리스(Chipless)'라고 부르기도 한다. 칩리스는 자신의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는다. 설계도를 주는 대신 로열티를 받는다. 스마트폰용 CPU를 개발한 영국의 ARM이 대표적이다.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의 95% 이상에 ARM의 설계기술이 적용돼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에 320억달러에 인수돼 화제를 모았다.

 


※ 퀄컴과 한국의 인연

신생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에 손을 내밀어 CDMA 방식의 이동통신을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가 한국이다(1996년 첫 상용화). 그래서 퀄컴의 '특허 갑질'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괘씸한 회사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퀄컴을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않다. 1991년 5월 국책연구원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퀄컴과 CDMA 기술 공동개발계약을 체결했다. 인지도나 재정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던 퀄컴이 한국과 협력하게 된 것은 퀄컴의 고객확보에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작용했다. 당시만 해도 CDMA 기술은 미국에서조차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하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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