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년부터는 사용하지 않은 항공사 마일리지는 사라진다고 하는군요. 마일리지를 쓰자고 계획에 없던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당황스러울텐데요.
사라지는 마일리지, 이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올해 3분기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회계장부에 잡힌 마일리지 금액은 각각 2조1610억원, 5878억원에 달합니다. 내년부터 유효기간 10년이 지난 마일리지는 사라집니다. 지난 2008년부터 항공사들이 기존에 없던 마일리지 유효기간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죠.
◇ 국적항공사 마일리지 누적액 '2조7490억원'
양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공식적으로 고객에게 부여한 마일리지 총액은 물론 소진금액 등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 기밀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항공사가 알려주지 않아도 마일리지 총액을 확인할 방법은 있습니다. 재무제표상 이연수익과 장기선수금 항목이 마일리지 누적금액을 뜻하기 때문이죠.
대한항공은 고객에게 부여한 마일리지를 이연수익, 아시아나항공은 장기선수금이라는 회계항목으로 각각 처리합니다. 두 항공사의 올해 3분기말 기준 연결재무제표를 보면 대한항공은 이연수익으로 2조161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장기선수금으로 5878억원을 잡아놨습니다.
이연수익과 장기선수금은 재무상태표상 부채항목에 들어가는데요. 항공사는 고객이 자사 항공권을 구매하면 이에 대한 서비스 대가로 마일리지를 지급합니다.
이 마일리지는 고객이 당장 사용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사용할 금액입니다. 항공사는 고객이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순간 해당 마일리지 액수만큼 보너스항공권, 좌석승급 등으로 갚아야 하는 빚으로 보고 회계상 부채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최근 5년 간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누적액 변화를 보면 액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3년 1조5589억원이던 마일리지 누적액이 올해 3분기 기준 1.4배가량 늘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도 2013년 4328억원에서 올해 3분기 약 1.3배 늘어난 587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두 항공사 모두 고객이 늘고 매출도 증가한 만큼 고객에게 지급한 마일리지 규모도 커진 것이죠.
◇ 마일리지 항공권 전체좌석의 1~3%
문제는 고객의 항공마일리지는 쌓여 가는데 이를 소진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고객이 사용하지 못한 마일리지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제도가 도입됐고, 첫번째 소멸 시한이 다가오면서 고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유효기간 제도를 도입해 2008년 7월 1일부터 적립되는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는 약관개정을 진행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도 대한항공을 따라 같은 해 10월 마일리지 유효기간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다만 대한항공이 일괄적으로 유효기간을 10년으로 규정한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회원 등급에 따라 최소 10년에서 최대 12년까지 유효기간을 차등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8년 7월부터 12월까지,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적립한 마일리지를 올해까지 쓰지 않으면 내년 1월 1일 자동 소멸됩니다. 또 2009년에 적립한 마일리지는 2020년 1월 1일 소멸됩니다.
해당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소멸되기 전 마일리지를 사용하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항공권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항공사들이 보너스항공권의 좌석 비중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활용률이 1~3%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보너스항공권 비중이 적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국토교통부와 항공사들은 극성수기에도 마일리지로 구매 가능한 좌석률을 5% 이상까지 늘리는 내용에 최근 합의했습니다. 그동안 마일리지로 구매 가능한 좌석수가 5%도 못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또 항공사들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보너스 항공권 좌석 비중도 공개할 예정인데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내년부터 분기별로 전체 비행기 공급좌석 중 마일리지 좌석으로 소진된 비율을 밝히게 됩니다.
◇ 사용처마다 다른 마일리지 가치
물론 항공권 구매 외에도 마일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사용처는 있습니다.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유효기간 제도를 도입하면서 자사 로고상품·렌터카·호텔·리무진·쇼핑몰 등 지속적으로 마일리지 사용처를 넓혀왔습니다.
하지만 항공권을 구매할 때의 마일리지 가치에 비해 다른 사용처에서 쓸 때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한항공에서 김포~제주 간 왕복항공권을 구매할 때 필요한 마일리지는 1만 마일입니다. 아시아나항공도 김포~제주간 왕복항공권 구매에 1만 마일이 필요합니다. 성수기나 특가상품에 따라 항공권 가격은 다르지만 정상 운임가를 기준으로 하면 두 항공사 모두 김포~제주간 항공권을 20만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마일리지 가치를 환산하면 1마일리지 당 20원이 나옵니다.
반면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제주 한진렌터카에서 차를 빌리면 24시간(중형차) 기준으로 8000마일이 필요합니다. 정상 가격인 2만6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마일리지 당 가치는 3.25원입니다. 항공권을 구매할 때보다 가치가 6배 이상 떨어집니다.
마일리지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시아나항공도 마찬가지인데요. 아시아나항공과 제휴를 맺은 CGV에서 평일에 영화티켓을 구매하면 1400마일리지가 필요합니다. 실제 티켓값 1만2000원 기준으로 1마일리지 당 가치는 9원입니다. 김포~제주 간 항공권을 구매할 때 가치(1마일 당 20원)를 기준으로 CGV티켓값을 계산하면 2만8000원이 나옵니다. 1만2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티켓을 마일리지로 구매하면 2만8000원에 사는 셈이죠.
지난 2011년 남편의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상속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당시 법원은 마일리지도 항공권 판매대금에 포함되는 만큼 고객이 무상으로 지급받는 혜택으로 치부될 수 없다며 항공마일리지의 재산권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항공마일리지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홍훈희 법무법인 양헌 변호사는 "항공사 마일리지는 비행기를 타야 쓸 수 있는데 10년 전에 비행기를 탄 사람이 그 사이에 권리 행사(마일리지 사용)를 하지 않았다고 소멸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적어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게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