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블랙 미러' 다섯번째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에는 작중 유명 가수 애슐리의 인격을 그대로 옮겨놓은 '애슐리 투'라는 반려로봇이 나온다. 이 로봇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읽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반려로봇, 더 나아가 인간과 같은 고차원 사고를 수행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 두뇌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회사가 만든 신경망처리장치(NPU·Neural Processing Unit)가 그 중심에 위치했다.
◇ 뇌를 본딴 '반도체'
인간의 뇌는 작은 세포인 1000억개 이상의 뉴런으로 구성된다. 뉴런은 통로 역할을 하는 100조개 이상 시냅스를 통해 서로 다른 뉴런으로 전기자극을 보낸다. 사람이 아침밥을 먹으면서 그날 할 업무를 머릿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동시에 할수 있는 것도 뇌의 이같은 구조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18일 육성계획을 발표한 NPU는 뉴런이란 명칭을 본딴 이름 그대로 인간의 뇌구조를 일부 복사했다. 뉴런의 역할을 하는 여러 처리 장치가 동시 다발적으로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고 이에 적합한 결과를 낸다.
가전기기에서 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전체 시스템의 제어를 담당하면, NPU는 여러 데이터를 집중 처리하는 역할분담이 이뤄진다. 수천가지가 넘는 정보를 분석하는 딥러닝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에 적합한 반도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NPU는 이미 갤럭시 S10 시리즈에 적용됐다. NPU는 여러 번의 학습을 거쳐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얼굴과 음성을 인식하는 작업을 돕는다. 회사가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인포테인먼트형 시스템용(차량 내부 화면, 음악, 이미지센서 등 제어) 반도체 '엑시노스 V9 오토'에 탑재된 NPU는 1초에 수십조번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한다.
장덕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개발실장은 "NPU 초당 연산처리 능력은 2020년경 수백조번, 2030년경이면 수천조번에 이를 것"이라며 "사람처럼 행동하는 휴머노이드 두뇌 제작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 NPU, '확 키운다'
삼성전자는 NPU를 자체 개발하는 등 회사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1등 등극'을 목표로 발표한 133조 투자계획 일환이다. 경쟁사인 미국 애플 및 퀄컴, 중국 화웨이 등 여러 업체들도 NPU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NPU 분야 인력을 2030년까지 2000명 규모로 현재의 10배 이상 확대한다. 회사는 앞서 지난 5월 '종합기술원 몬트리올 AI랩'을 딥러닝 전문 연구기관 캐나다밀라연구소로 확장 이전하고, 2017년부터 뉴럴프로세싱연구센터를 짓는 등 국내외 석학들과 NPU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더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데이터센터 등 NPU가 탑재되는 제품 범위를 넓힌다. 아울러 회사는 NPU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사람 두뇌 수준의 정보처리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뉴로모픽(Neuromorphic) 프로세서 기술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사장은 "딥러닝 알고리즘의 핵심인 NPU 사업 강화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라며 "앞으로 차별화된 기술과 글로벌 기관들과의 협력, 핵심 인재 영입 등을 통해 한 차원 더 진화된 혁신적인 프로세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