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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데자뷔' SK하이닉스의 노림수

  • 2019.07.25(목) 16:08

11년만에 '감산' 선언…D램값 급락 위기감
반도체 재고부담 해소…가격반등 계기 마련

"시장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생산과 투자를 조정할 계획이다."-SK하이닉스 2분기 경영실적 보도자료 中

SK하이닉스가 25일 속수무책 떨어지는 메모리 가격 하락에 대응해 감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만업체를 필두로 극단적인 가격인하 경쟁이 불붙으며 메모리 가격이 폭락했던 2008년 이후 11년만에 나온 공식적인 감산 선언이다.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끌어올려야할 만큼 지금의 메모리 시장이 심각하다는 걸 의미한다.

구매 미루고 창고엔 재고 쌓여
수요<공급, D램 1년새 60% ↓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경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지난해 6월말 개당 8.19달러였던 D램(PC용 범용제품 기준,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 말 3.31달러까지 떨어졌다. 1년새 하락폭이 60%에 이른다. 같은 기간 메모리카드에 쓰이는 낸드플래시 가격도 5.60달러에서 3.93달러로 30% 하락했다.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바람으로 2년 가까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업체들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애플·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IDC) 투자가 지난해 하반기 주춤하면서 찬바람을 맞았다.

값을 후하게 치르고 반도체를 가져가던 곳들이 추가 구매를 미뤘고, 창고에 쌓인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사들은 부랴부랴 가격을 낮춰 팔았다. 그럼에도 재고는 무섭게 쌓였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빅3' 업체들의 재고자산회전일수는 161일에 달했다. 한두달 수준의 재고를 쌓아뒀던  기존의 분위기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김석 SK하이닉스 D램 마케팅담당 상무는 이날 2분기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2분기말 D램 재고가 기존 예상보다 증가했고, 하반기 재고 감소 속도도 예상보다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킨게임으로 혹독했던 2008년
이번엔 '더 어렵기 전 ' 특단카드

SK하이닉스가 공식적으로 감산을 선언한 건 2008년이 마지막이다. 그해 4월 낸드플래시 생산량 감축을 발표한데 이어 9월에는 이천·청주·미국 유진·중국 우시 등에 있던 200㎜ D램 생산라인의 가동중단을 선언했다.

대만업체들이 D램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며 공격적인 물량확대 정책를 펴면서 메모리 가격이 급락한 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경기가 급격히 꺾인 탓이 컸다. 당시 D램(512Mb 기준) 가격은 원가 이하인 0.3달러까지 곤두박질했다.

2009년 1월 독일 키몬다의 파산으로 치킨게임은 끝을 맺었지만 SK하이닉스는 2008년 1조92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여러 업체들이 난립하던 당시와 메모리 빅3 체제로 바뀐 지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SK하이닉스 내부에선 생산량을 줄이는 특단의 조치 없이는 위기돌파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매출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D램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감산 결정을 내리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날 SK하이닉스는 하반기 시장 상황과 관련해 "D램은 서버용 수요가 여전히 부진하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모바일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낸드플래시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며 비교적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 것과 차이가 있다.

'빅3' 감산 움직임 확산
공급축소 반기는 주식시장

이번 결정으로 메모리 시장의 공급과잉 우려가 한풀 꺾일 전망이다.

앞서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 감산규모를 5%에서 10%로 확대했고, 일본 도시바는 지난달 미에현 요카이치 공장의 정전으로 비자발적 감산이 불가피해졌다. 메모리 시장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감산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전세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부사장은 지난 4월말 1분기 실적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D램 수요 감소에 대응해 설비 재배치 등을 통해 라인 최적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인 최적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급 축소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메모리 가격이 일시 급등한 시점에 감산 발표가 이뤄진 점도 눈길을 끈다.

가격반등을 앞당기면서도 메모리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시도에 대한 비판을 희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표된 뒤 일부 D램 현물가격이 25% 상승하는 등 반도체시장은 수급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식시장도 감산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전일대비 1600원 오른 7만9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적극적으로 공급을 조절해 시황에 대응하겠다고 발표한 점이 향후 메모리 수급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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