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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삼성은 왜 '몽구스'를 포기했나

  • 2019.11.21(목) 17:06

자체 모바일 AP CPU 개발작업 4년만 좌초
경쟁사 제품 대비 부족한 성능 꾸준히 지적
GPU 등 다른 비메모리 분야 주력 관측 나와

"올해 초 엑시노스 9820이 어떻게 스냅드래곤 855에 두들겨 맞았는지를 고려한다면, 삼성이 퀄컴 제품의 성능을 따라잡는데 전작 대비 20%의 성능 향상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해외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안드로이드 폴리스는 지난 10월23일(현지시간) 공개된 삼성전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990내 중앙처리장치(CPU) 코어의 예상대비 저조한 성능을 이같이 꼬집었습니다. 애플인사이더라는 매체는 "삼성의 새로운 엑시노스 990은 커스텀 M코어를 품기에 충분히 빠르지 못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명백하게 끝난 M"이라는 표현을 써 더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구요.

두 매체가 표현은 달리 했지만 문제로 지적한 것은 M코어, 바로 프로젝트 몽구스(Mongoose)의 약자입니다. 삼성전자가 2015년부터 4년간 치열하게 진행한 모바일 AP용 CPU 기술독립의 염원이 담긴 프로젝트인데요. 하지만 지난 1일 삼성이 해당 프로젝트 인원을 해고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몽구스 프로젝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전자는 왜 이 프로젝트를 접었을까요.

◇ 퀄컴 '독사' 잡는 삼성 '몽구스'

엑시노스 990은 삼성전자 기술력이 총 동원된 제품입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 등을 담당하는 DS부문내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별도 파운드리 사업부가 7나노 2세대(LPP) 공정으로 생산했죠. 모바일 AP는 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주요 부품이 함께 탑재된 통합칩입니다.

엑시노스는 삼성이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ARM의 '모바일용 CPU 코어 아키텍처'를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아키텍처는 CPU 등 주요 부품의 구조와 설계방식 등을 포괄하는 뼈대입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아키텍처가 온전하지 못하면 성능이 되레 떨어지기도 할 만큼 역할이 막중하죠.

특히나 CPU에서 정보처리를 다루는 핵심 부품 코어 아키텍처는 중요성이 매우 높겠죠. 삼성전자는 사실상 자사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S부터 쭉 ARM의 CPU 코어 아키텍처를 일부 수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연간 수억대의 엑시노스가 갤럭시와 더불어 팔렸음에도 삼성전자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모바일 AP 경쟁사 제품과 성능에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해서죠.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팹리스(공장 없이 반도체를 설계, 판매하는 회사)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퀄컴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스냅드래곤 생산을 맡기면서도 모바일 AP 시장을 둔 경쟁자인 '동지이자 적'입니다.

삼성전자는 '앙숙' 퀄컴을 잡을 '비장의 카드'로 자체 CPU 코어 개발을 선택합니다.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스틴 연구개발센터가 2015년부터 이같은 중책을 맡았습니다.

연구진은 ARM에서 코어 아키텍처를 들여오되 핵심 내용을 뜯어고치는 방식으로 성능 개선을 꾀합니다. CPU와 코어를 집과 기둥에 비유하자면, 기존에는 기둥을 일부 손질하는데 그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기둥째로 뜯어 고치는 대안을 모색한 것입니다.

모바일 AP 시장 점유율

출하량 기준 모바일 AP 시장 1위 퀄컴을 넘기 위해 마케팅뿐만 아니라 성능개선 필요성을 삼성이 느꼈겠죠.

삼성전자가 굳이 ARM의 아키텍처란 형식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건드리는 선택을 한 것은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 것입니다. ARM이 모바일 AP 시장 점유율 90%를 점유하며 막대한 특허 및 주변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무기로 든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어렵겠죠. 당시 퀄컴도 삼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CPU 코어를 설계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몽구스란 이름 그 자체입니다. 몽구스는 포유류과로 맹독을 한 껏 품은 독사를 먹이로 삼기도 하는데요. 퀄컴의 자체 개발 CPU 프로젝트는 그간 꾸준히 독사류 이름이 붙었습니다. 경쟁사 CPU를 한 단계 뛰어넘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가 엿보이죠. 갤럭시S7부터 노트11까지 삼성은 자체 개발 CPU 코어와 ARM 아키텍처를 일부 수정한 코어를 혼합해 탑재했습니다.

◇ 독립의 꿈은 접었지만...

삼성전자가 올초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9'에서 공개한 커넥티드카 조종석 디지털 콕핏. 엑시노스 오토 등 차량용 반도체가 다수 탑재된다./사진=삼성전자 제공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1월 1일(현지시간) 미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몽구스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300여명 가까운 직원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외신의 혹평이 쏟아지는 CPU 코어 자체 개발에 집중하느니 다른 분야에 힘쓰는 것이 낫다는 취지겠죠. 엑시노스는 퀄컴 스냅드래곤과 애플 A시리즈 대비 성능이 밀린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았습니다. 차라리 ARM의 CPU 코어 아키텍처를 그대로 쓰는 것이 낫다는 비판은 매 갤럭시S 시리즈 출시 때마다 줄기차게 나왔습니다.

삼성은 앞으로 스마트폰 CPU 코어 전부를 ARM 아키텍처를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정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삼성전자의 몽구스 포기를 퀄컴에 대한 완전한 패배로 보긴 어렵습니다. 퀄컴 역시 2016년 말 공개한 스냅드래곤 835부터 독사류 프로젝트명은 유지하되 자체 개발 CPU 코어를 쓰지 않아서죠. 스냅드래곤 835는 해외 출시 갤럭시 S8 등에 탑재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퀄컴과 동일한 선상에 놓인 만큼, 성능 역전의 기회도 열릴 수 있겠죠.

삼성전자가 모바일 AP용 CPU 코어외 집중할 다른 분야로 GPU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스마트폰용 자체 GPU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외부 GPU 기술자를 영입하며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에 들어가는 GPU 코어 아키텍처를 ARM 자회사 MALI로부터 들여와 일부 수정하는 선에 그쳤습니다.

GPU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GPU는 입력된 다수의 명령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분야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부쩍 GPU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컴퓨터용 CPU, GPU 세계 2인자 미국 AMD와 GPU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협약을 체결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업계는 AMD GPU 기술이 엑시노스에 들어갈 자체 개발 GPU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장이 활짝 열릴 자율주행차의 두뇌 '자동차용 AP' 등에도 GPU의 역할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삼성전자가 올초 독일 자동차업체 아우디에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엑시노스 오토 8890'은 GPU 코어가 12개가 들어갑니다. CPU 코어 탑재량이 8개인 것을 감안하면 GPU의 역할이 큰 것을 알 수 있죠.

GPU 등 비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 데이에서도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비메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이같은 변화를 실감케 합니다.

그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총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비메모리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몽구스 프로젝트의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메모리업계의 위상을 재현해 낼 것인지를 놓고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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