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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나도 그렇게 생각"…한전 떠나며 남은 회한

  • 2021.05.28(금) 16:20

[한전 주총 스케치]28일 나주 본사 현장
김종갑 사장, 일반 주주 발언 30분간 경청
전기요금 현실화 지적한 주주 발언에 '공감'

이견은 없었다.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한국전력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이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사장 선임과 함께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 선임 안건도 반대표 없이 처리됐다.

하지만 주총은 길었다. 임원 선임 안건 단 3개만 있는 임시주총이었고 반대표가 나오지도 않았지만 마무리되는 데 50분이나 걸렸다. 한 개인주주가 발언권을 얻어 임원 선임과 상관없는 발언을 30분이 넘도록 진행했기 때문이다. 

정기주총 시즌이 되면 각 회사 주총장에 일명 '주총꾼'이 종종 와서 행사를 방해하곤 한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다른 주주들이나 회사 직원들에 의해 발언이 막히거나, 진행에 심각한 방해를 하면 주총장 밖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한전 주총은 달랐다. 이번 주총을 통해 물러나는 김종갑 한전 사장은 이 개인주주의 발언을 듣고 '진심으로 동감한다'며 감사한다는 말을 거듭 남겼다.

안건과 상관없는 주주의견 30분 경청

한국전력은 28일 오전 10시 나주 본사에서 임시주총을 열었다. 이날 주총장은 코로나 19 상황임을 감안해 간격을 두고 자리를 마련했다. 임시주총이다보니 그리 많은 수의 주주들이 참석하지는 않았다. 대략 50여명의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했다. 

한 주주는 앞자리에 앉겠다며 다른 주주에게 자리 양보를 강요하기도 했다.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한 주주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주총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정각이 되자 주총이 시작됐다. 의사봉은 김종갑 한전 사장이 잡았다. 김 사장은 이날 주총으로 임기를 마친다. 김 사장이 자리에 서자 두명의 주주가 손을 들었다. 안건을 상정하기도 전이었다. 주총 안건과 상관없는 발언은 하지 말아달라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저 앞자리에 앉겠다고 자리를 양보받은 주주가 마이크를 차지했다.

"김쌍수 사장 시절에 한전이 내 땅에 사전에 통보도 없이 고압선을 설치해서……" 

이 주주는 수십년전 자신의 개인 토지에 한전의 설비가 들어온 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안건과 상관없는 발언이 이어지자 다른 주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김 사장도 진행을 위해 발언을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5분여만에 발언이 끝났다.

다음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던 주주의 차례였다. 주총을 진행하려는 김 사장도 계속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발언을 허용했다. 역시 이사선임 안건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주주들의 불만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 사장의 반응이 달랐다. 30분이 넘도록 이어진 주주의 발언이 끝나자 김 사장이 입을 뗐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주 "원가연계형 요금제 제대로 해달라"

의사진행을 방해한 발언이지만 김 사장은 해당 주주의 지적에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주주가 주장한 것이 한전의 고질적인 숙원인 전기요금 현실화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주주는 지난해 한전이 도입한 원가연계형 요금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가연계형 요금제란 전기를 만드는 원가가 오르면 요금도 올리고, 반대로 원가가 떨어지면 요금도 내리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 한전은 원가와 상관없이 요금을 정했다 그러다보니 유가가 오르면 적자, 유가가 내리면 이익을 내는 천수답식 경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주주의 주장은 원가를 반영하는 방식도 문제가 많은데 제도를 도입해놓고도 시행조차 하지 못해 한전이 큰 손해를 입고 있다는게 요지였다. 

실제로 올해 2분기 전기요금은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적용해 전분기보다 올랐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 19 상황임을 감안해 요금 인상을 보류했다. 이 조치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한전의 연간적자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도 내린다.

김종갑, 주주 의견 공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주주의 발언이 계속되는 도중 한전 직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김 사장은 발언을 듣겠다며 직원을 물렸다. 목소리도 작고 마이크도 잡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김 사장은 그 주주의 말을 모두 경청했다.

발언이 끝난 뒤 김 사장은 "나도 지금 요금제도가 완벽한 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감했다. 그는 "하지만 주주와 전기소비자, 정부 그리고 한전에 필요한 제도가 123년 만에 생겨 천수답식 경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며 "주주님의 지적처럼 제도에 더 반영해야 하는 요인들이 있다는 것은 정부는 물론 한전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에게 안정적으로 배당을 하고, 전기소비자에게는 가장 낮은 원가의 전기를 공급하면서 투자재원도 확보해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응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정부와 한전의 목표"라며 "임기동안 완벽하게 이루지 못해서 송구하다"고 덧붙였다.

발언을 했던 주주도 김 사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퇴임을 앞둔 경영자의 발언에 주총장에 있던 한전의 직원들도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주총을 모두 진행한 김 사장은 끝으로 "3년간 한전과 함께한 것은 무한한 행복과 영광이었다"며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 국민 모두가 공감해야 풀릴 문제"

앞서 해당 주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오는 정 사장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정작 이야기를 들어줄 김 사장은 이제 떠나는 사람이다. 이날 정 신임 사장은 주총장에 없었다. 정식 취임 이후에 한전 본사를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주총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고 모를 리는 없다. 그만큼 전기요금 문제는 한전에 중요한 이슈다. 이번 주총은 한전의 수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주총이 끝난 뒤 만난 한 한전 직원은 "요금제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지만 풀기 위해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주주의 발언에 한전 직원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며 "어렵게 마련한 원가연계형 요금제가 제대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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