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업체들이 최적의 교통수단을 의미하는 이른바 'MaaS'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카카오와 SK텔레콤이 글로벌 자본 및 기술과 결합해 경쟁을 벌이는데다 롯데렌탈, 쏘카 등이 상장을 했거나 시동을 걸면서 시장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구체적인 서비스의 모습을 살펴본다. [편집자]
국내 자동차 업계 중 모빌리티 사업에 발을 뻗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유일하다. 지향점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업체(Smart Mobility Solution Provider)'다. 새로운 이동 서비스를 기획해 사람을 모으는 게 정보기술(IT) 업계 중심의 모빌리티 플랫폼이라면, 현대차그룹은 그 플랫폼에 알맞은 '탈 것'을 제공하는 걸 첫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은 카니발, 스타리아 등 승합차 위주지만 앞으로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라스트마일모빌리티,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미래형 운송수단으로 영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플랫폼 서비스 운영까지 염두에 두고 미래사업을 구상하는 한편, 해외와 국내 모빌리티 업체 지분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모빌리티 기업에 총 7000억원 투자
현대차그룹은 2018년부터 모빌리티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3년간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7000억원이 넘는다. 주요 투자처는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호출형 차량공유 서비스(카헤일링)를 운영하는 기업들이었다.
현대차그룹이 가장 큰돈을 투자한 곳은 인도의 카헤일링 업체 '올라(ola)'다. 현재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 125개국 도시에 카헤일링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올라와 2019년부터 협업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이 현재까지 올라에 투자한 금액(올라 일렉트릭 포함)은 3666억원. 현대차가 2933억원(3.9%)을 기아가 733억원(0.9%)을 각각 투자했다. 모빌리티 산업에 투자한 7000억 가운데 절반이 넘는 금액을 인도 모빌리티 시장에 투입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분 투자 외에도 올라와 플릿 솔루션 사업(빅데이터 기반으로 차량 정비, 금융 등을 제공하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 인도 특화 전기차(EV) 생산,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 등 3대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에 투자하며 발을 넓혔다. 2012년 카헤일링 호출 서비스 기업으로 시작한 그랩은 동남아 8개국 200여개 도시에 음식 배달 서비스, 쇼핑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종합 경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기업 가치 396억달러(약 46조원)을 인정받은 그랩은 현재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랩은 현대차그룹과 2018년부터 협업을 시작해 2019년 싱가포르, 2020년 인도네시아에서 전기차 카헤일링 서비스에 나섰다. 올해는 베트남까지 확대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랩에 총 3111억원을 투자하며 지분 1.8%도 확보했다. 앞으로 그랩과 동남아 지역의 전기차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연구를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임대, 배터리 교체서비스, 전기차 전용 금융상품 등의 사업도 검토 중이다.
모빌리티 기업에 직접 자동차 공급도 한다. 현대차는 2019년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카헤일링 서비스 업체 '카림'에게 쏘나타, 투싼, 싼타페 등 5000대를 공급했다. 기아는 지난 6월 글로벌 우버와 유럽 내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앞으로 기아는 유럽 약 20여개국의 우버 드라이버에게 전기차를 공급하며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모빌리티 다중통합 서비스(Multi Aggregation) 사업을 하는 미고(Migo)에 20억원을 투자했다. 미고는 2016년 설립한 회사로 모빌리티 다중통합 서비스를 미국에 최초로 선보인 기업이다.
모빌리티 다중통합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고객에게 차량공유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목적지를 앱에 입력하면 차량 공유 업체들의 서비스 가격, 소요시간 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식이다. 현대차는 미고 투자를 통해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 대한 노하우와 관련 기술들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모빌리티 기업에도 투자 중이다. 2018년 라스트 마일(Last-mile) 모빌리티 기업인 '메쉬코리아'에 225억원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라스트 마일이란 마지막 1마일 내외, 이동의 개인화된 끝 단계라는 뜻이다. 메쉬코리아는 IT 기반의 종합 유통물류 브랜드 '부릉(VROONG)'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또 2019년엔 마카롱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KST모빌리티에 50억원(현대차 40억원·기아 10억원), 모빌리티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에 170억원(현대차 20억원·기아 15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차그룹의 '이유 있는' 변신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모빌리티 사업에 적극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술도 고객도 바뀌어서다. 정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은 2019년 '미래차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가까운 미래에 고객들은 도로 위 자동차를 넘어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과 라스트마일 모빌리티, 로봇 등 다양한 운송수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을 자동차만 판매하는 기업이 아닌 고객에게 필요한 모빌리티를 적재적소에 제공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 전환하겠단 얘기다. 지난 3년간 국내·외 모빌리티 기업에 7000억원 넘게 투자한 이유도 모빌리티 산업 노하우와 관련 기술 등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행보였던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모빌리티 서비스'라는 두 축으로 모빌리티 시장 공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 로보틱스, UAM, 자율주행차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모빌리티 디바이스)하고 현대차그룹이 제작한 플랫폼 안에서 관련 모빌리티를 제공(모빌리티 서비스)해 나가겠다는 청사진이다. ▷관련기사: 정의선의 '6년 대계'…현대차, 61조 쏟는다(2019년 12월4일)
최근엔 확장된 모빌리티 디바이스 제품군들을 선보이며 관심을 끌고 있다. UAM인 'SA-1'과 자율주행차 '아이오닉5 로보택시'가 대표적이다. SA-1은 'CES 2020'에서 콘셉트 개념으로 공개됐고, 아이오닉5 로보택시는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SA-1은 현대차와 우버엘리베이트가 공동으로 개발한 UAM. 순항속도는 시속 240km로 한번 충전해 최대 100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단거리에 초점이 맞춰진 모델로, 충전 시간은 최소 5~7분, 수직 이·착륙을 하지만 소음이 적어 도심항공모빌리티로 적합하단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에 전동화 UAM을 시장에 내놓고 2030년에는 인접 도시를 서로 연결할 계획이다.
아이오닉5 로보택시는 현대차의 첫 상업용 완전 무인 자율주행 차량이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5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앱티브(Aptiv)와 설립한 합작법인 모셔널(Motional)과 함께 개발한 자율주행 기술을 아이오닉5 로보택시에 적용했다.
이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 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4 자율주행 기술에 해당한다. 레벨4는 자동화 시스템이 상황을 판단해 운전하고, 비상시에도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외관에 설치된 약 30개의 라이다, 레이더 센서가 360도 전방위로 주행 상황을 감지해 자율주행시스템을 보조한다.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닉5 로보택시를 오는 2023년까지 라이드 헤일링(ride-hailing) 서비스에 투입할 예정이다. 라이드 헤일링은 승객을 원하는 지점까지 이동시켜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과 모셔널은 차량 공유 업체인 '리프트'에 아이오닉5 로보택시를 대량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