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848자 짜리 신년사에서 휘발유를 넣고 달리는 내연기관 차에 대해 딱 한번 언급했다. "완성차 사업은 수익성 중심의 사업운영 체제를 확립"하자는 것이 전부였다.
2018년 수석부회장 승진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지난해 신년사는 완성차에 대해 이 정도로 무심하지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그는 "차 산업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글로벌 탑 5'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해외진출을 가속화하고, SUV모델 등 라인업을 확대하자"는 전략도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 정 회장의 관심은 휘발유와 운전자 없이 달리는 차, 차에서 벗어나 모빌리티(이동 서비스)에 쏠려있었다. 관심은 작년 신년사보다 더 커졌다.
자율주행은 지난해 '2021년 로보택시 시범 운영'에서 올해 '2023년 상용화 개발'로 구체화됐다. 수소전기차도 '대중화 선도'에서 '차량뿐 아니라 연료전지시스템 판매 본격화'로 일년만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올해는 아예 차가 아닌 로봇,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 스마트시티 등 새로운 모빌리티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 CES)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CES에서 현대차는 4개의 바퀴 달린 로봇 다리를 움직이는 '엘리베이트(Elevate)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꾸밀 수 있는 맞춤형 전동화 기반의 모빌리티, 글로벌 커넥티드카 서비스 확대 등 전략을 발표했다. 현대차가 그린 미래의 기반은 바퀴 달린 차였다.
하지만 올해 CES 현대차 부스에선 바퀴 달린 차는 잘 보이지 않았다. UAM, PBV(Purpose Built Vehicle :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 등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모빌리티를 소개했다. 우버와 손잡고 만든 활주로없이 비행이 가능한 'S-A1'(사진)도 공개했다.
올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출범한지 20년이 되는 해다. 1946년 설립된 현대차는 2000년 그룹 틀을 갖추고 '글로벌 5위'까지 질주했다. 지난 20년간 덩치를 키웠지만 앞으로 시간은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시기다. 급변하는 세계 차 시장은 완전한 혁신과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1995년 금성사(Goldstar)는 LG로 사명을 바꾸며 회사 체질을 완전히 바꾸었다. 제일제당은 CJ로 사명을 바꿔 사업 체질을 식품에서 미디어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현대차그룹 사명에서 '차'를 빼는 날이 올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현대차그룹(Hyundai Motor Group, HMG)이 아닌 현대모빌리티그룹(Hyundai Mobility Group, HMG)으로 말이다. HMG의 혁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