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난이 국내 완성차 업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수입차 틈바구니에 설 자리가 좁아진 가운데 반도체 수급난까지 겹치면서 판매가 급감하고 있는 외국계 자본 완성차 3사 얘기다.
"경제 어려울수록 부익부 빈익빈"
르노삼성차, 한국지엠(GM), 쌍용차 등 국내에 생산기지를 둔 외국계 자본 완성차 3사의 지난 10월 내수 총 판매는 1만774대로 집계됐다. 전년동기 대비 50.6% 줄어든 것이다. 반도체 수급난에 판매량이 반 토막 났다. 회사별 판매량을 보면 르노삼성차 5002대, 쌍용차 3279대, 한국지엠 2493대 등이다. 작년 10월과 비교하면 각각 30%, 56.9%, 64.7% 줄어든 판매 성적표다.
한국지엠은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쌍용차보다도 차를 못 팔았다. 대표 차종인 트레일블레이저를 생산하는 부평공장이 지난달 2주간 가동이 중단된 여파도 있다. 하지만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릴 만큼 국내 수요도 끌어오지 못했다. 여기에 내년에 차세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 생산을 위해 시설을 정비하고 있는 창원공장도 사실상 셧다운 상태다.
외국계 자본 완성차 3사는 그간 이중고에 시달렸다. 현대차와 기아와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벤츠·BMW 등 수입차에도 밀린 지 오래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의 지난달 판매량에서 외국계 자본 완성차 3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머물고 있다. 10년 전인 2012년 10월과 비교하면 7%포인트가량 떨어진 수치다.
여기에 지난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이어 올해 반도체 수급난까지 터지면서 입지가 더 좁아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자동차 업계도 빈익빈 부익부 가속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출 물량도 반도체 수급난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지엠의 지난달 수출은 4382대로 전년동기 대비 82% 급감했다. 르노삼성차의 지난달 수출은 6625대로 작년 10월(392대)에 비해 급증했지만, 지난해 닛산 로그의 위탁 생산이 중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이 정상화되고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비교 '잣대'를 지난 9월로 바꾸면 수출은 36% 줄었다.
그나마 자동차 수요는 꾸준하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장 수요가 높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며 "반도체 수급이 개선되면 시장 수요가 높은 차부터 최대한 많이 생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RV·제네시스, 오히려 판매 늘었다
현대차는 재고를 활용해 반도체 수급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은 5만7813대로 전년동기 대비 12% 주는 데 그쳤다. 지난 9월과 비교하면 31.8% 증가하며,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한 판매 부진의 바닥을 친 상황이다.
지난달 열린 현대차 기업설명회에서 서강현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오는 4분기에 반도체 공급 상황이 일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도매판매 기준으로 3분기 대비 4분기 판매가 15~2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부사장의 전망치만큼은 아니지만 실제로 4분기의 첫 달인 지난 10월 수출을 포함한 현대차의 총 판매는 30만7039대로 지난 9월보다 7.8% 늘었다.
지난달 현대차의 차종별 내수 판매를 보면 고마진 차량의 판매가 오히려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지난달 레저용차량(RV) 판매량은 1만8194대로 전년동기 대비 6.8% 증가했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지난달 내수 판매(1만1528대)도 전년동기 대비 25.9% 늘었다. 반면 지난달 '승용' 판매는 1만8978대로 전년동기 대비 25.3% 줄었다. 포터 등이 포함되는 '소상' 판매(6817대)도 42.1% 감소했다.
기업설명회에서 윤태식 IR 팀장은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로 지난 3분기 판매는 감소했지만 RV와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차종의 판매 증가, 인센티브 축소 등으로 수익성을 지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이 같은 흐름이 10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