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에 상정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를 줄 트리거(방아쇠)로 평가받는다.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해묵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법안 통과 가능성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국회가 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는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매입 가격이냐 현재 가격이냐
지난 2020년 박용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2개 조항을 새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하기 위한 주식 소유의 합계는 가액(시가)을 기준으로 한다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자산운용비율은 보험회사의 투자대상이 한 곳이 편중되지 않도록 제한하는 규정이다. 투자대상의 위험이 보험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행 보험업법을 보면 보험사는 자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보험사 총자산의 3% 넘게 소유해선 안 된다.
자산운용비율의 '산정방식'은 보험업법이 아닌, 보험업감독규정에 있다. 보험업감독규정을 보면 주식의 소유금액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지난 6월 기준 삼성생명이 보유중인 삼성전자 보통주 5억815만주(8.51%)의 최초 취득금액은 5444억원이다. 이 기간 삼성생명의 자산 314조9987억원과 비교하면 0.17%에 불과한 수준이다. 보험업감독규정의 취득원가 기준으로 보면 총자산의 3%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계산하면 31조원에 육박한다.
개정안을 적용해보면 지난 6월 삼성생명의 자산의 3%(9조4499억원)를 제외한 21조원 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일부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찬반입장 쉽게 선택하긴 어려울 듯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2020년 정무위의 보험업법 개정안 검토보고를 보면 장단점이 뚜렷하다.
개정안을 지지하는 쪽에선 △보험업을 제외한 은행·상호저축은행·금융투자업은 현재도 시가를 기준으로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하고 있다는 점 △보험사의 자산운용 규제가 총자산은 시가 기준으로, 주식은 취득원가 기준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 △가격변동이 심한 주가를 시가로 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개정안에 신중한 입장에선 △계열사 부당지원 방지라는 규제 취지를 고려하면 주식의 취득 시점에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 △오랜 기간 적법하게 보유한 주식을 갑자기 강제매각해야 하는 상황은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고 재산권 침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 단순한 자산가치 변동으로 자산운용 규제 준수 여부가 결정돼 법적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을 겨냥한 보험업법 개정은 해묵은 법안이다. 2014년 이종걸 전 의원과 김기식 전 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선 발의된 개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주식 시장에 삼성전자 물량이 대거 풀리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는데, 개정안이 다시 상정된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당시보다 오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