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이 개최한 총 286회 이사회와 위원회에서 부결된 안건은 1건에 불과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를 제외한 나머지 19곳 기업의 사외이사가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제약바이오, 연평균 14건 이사회 개최
13일 비즈워치가 자산 상위 20개 제약바이오 상장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이들 기업은 지난해 평균 14번의 이사회 및 이사회 내 위원회를 열었다. 이사회 개최 횟수는 총 217건이었고 각종 위원회 개최 횟수는 총 69건이었다.
이사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였다. 양사 모두 업계에서 모범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3건의 이사회와 23건의 위원회를 진행했다. 회사는 △경영위원회 △보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ESG위원회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 등을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두고 있다. 특히 회사는 경영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회를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같은 기간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각각 15건의 이사회와 위원회를 소집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내부거래위원회 △ESG위원회 △인사위원회를 이사회 내 위원회로 설치했다. 각 위원회에는 최소 2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모두 개최한 위원회의 이사진 참석률이 100%를 기록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중외제약(이사회 13건·위원회 12건), 메디톡스(이사회 22건), 셀트리온(이사회 12건·위원회 6건), 동아에스티(이사회 13건·위원회 2건)도 이사회와 위원회를 자주 열었다. 특히 동아에스티의 경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 독립성을 확보한 게 특징이다. 최희주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보령은 이사회 내 위원회로 투자위원회를 구성한 점이 눈에 띄었다. 회사는 바이오텍 지분 투자, 우주 헬스케어 진출 등 활발한 투자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다만 이사회나 위원회 개최 횟수만으로 의결 활동의 질을 평가하긴 어렵다. 한 번 개최 시 여러 안건을 논의하는 기업도 있고 여러 번 개최하면서 조금씩 안건을 논의하는 기업도 있어서다.
286건 이사회 중 부결 안건 '하나'
제약바이오 기업이 이사회에서 다룬 안건은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부족한 편이었다. 경영실적 보고, 자본증권 발행 결의, 자회사 유상증자 결의 등 통상적인 이사회 안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의결권 결의 현황을 보면 총 286건의 이사회와 위원회 활동 중 부결된 안건은 1건에 불과했다. 부결된 안건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해 1월 개최한 1차 이사회에서 다룬 '2022년 전사 KPI(핵심성과지표) 승인의 건'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측은 "회사 발전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의견이 나와 부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기업에서는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가 전무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를 제외한 모든 기업의 사외이사가 1년 동안 각 사의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이사회 개최 시 사외이사 전원이 불참하는 사례도 있었다. 중외제약이 지난해 2월 소집한 2차 이사회에서는 '제77회 무보증 원화 사모사채 발행의 건'이 주요 안건으로 올라왔는데,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 중외제약의 지주회사인 JW홀딩스 역시 지난 2021년 개최한 10건 이사회 중 자금차입, 자금보충약정 체결과 관련한 3건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사내이사만으로 안건이 통과됐다. JW홀딩스가 지난해 5월 공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내부 통제 정책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기업가치 훼손 이력의 임원선임 방지 정책 등 핵심지표가 준수되지 않았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견제와 감시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된 '식물 이사회'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사외이사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ESG 경영 흐름에 따라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기업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건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