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5세대 HBM(고대역폭 메모리)인 'HBM3E'의 대규모 양산에 돌입한다. 지난달 마이크론이 HBM3E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실제 제품 공급을 위한 대량 생산은 세계 최초라는 게 SK하이닉스 측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제품 공급을 통해 AI(인공지능)용 메모리 시장 공략을 가속화해 'AI 메모리 선도 기업'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HBM3E 대규모 양산, 이달 공급 시작
SK하이닉스는 AI용 메모리 신제품인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3월 말부터 제품 공급을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지난해 HBM3E 개발을 알린 지 7개월 만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가치, 고성능 제품이다. 챗GPT와 같은 AI 분야 데이터 처리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수적이다.
이번에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E는 5세대 제품으로 HBM3(4세대)의 확장 버전이다. 초당 최대 1.18TB(테라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FHD(Full-HD)급 영화(5GB) 23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HBM3E가 속도와 발열 제어 등 AI 메모리에 요구되는 모든 부문에서 세계 최고 성능을 갖췄다고 강조한다. AI용 메모리의 필수 사양인 속도와 함께 발열 제어, 고객 사용 편의성 등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 세대 대비 열 방출 성능이 10% 향상됐다. 발열 제어를 위해 새롭게 적용한 '어드밴스드 MR-MUF' 기술 덕이다. 이는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이다. 칩을 하나씩 쌓을 때마다 필름형 소재를 깔아주는 방식 대비 공정이 효율적이고, 열 방출에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I 투자를 늘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AI 반도에 성능에 대한 요구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며 "HBM3E는 이를 충족시켜 줄 현존 최적의 제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거세지는 '엔비디아' 확보 경쟁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를 주요 고객사로 둔 HBM 시장 선두 업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다. 삼성전자(38%), 마이크론(9%)과의 격차도 큰 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HBM3E 역시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연내 양산될 엔비디아의 최상위 GPU인 'H200' 탑재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후발주자의 추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곳은 삼성전자다. 트렌드포스는 "처음에는 HBM3를 SK하이닉스가 독점 공급했으나, 삼성전자가 AMD의 MI300 시리즈용 검증을 받은 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검증 이후 AMD에 중요한 공급사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HBM3E 샘플 공급이 다소 늦었지만 1분기 말까지 HBM3E 검증을 마치고 2분기에 출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연말까지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를 크게 줄여 HBM 시장 경쟁 구도를 재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크론의 경우 4세대(HBM3)를 건너뛰고 5세대 HBM(HBM3E)으로 직행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HBM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만큼, 선단 공정 제품으로 진입해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들은 더 많은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경쟁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는 HBM3에 이어 HBM3E 역시 가장 먼저 고객에 공급,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이어 가겠다는 전략이다.
류성수 SK하이닉스 부사장(HBM 비즈니스담당)은 "당사는 세계 최초 HBM3E 양산을 통해 AI 메모리 업계를 선도하는 제품 라인업을 한층 강화했다"며 "그동안 축적해 온 성공적인 HBM 비즈니스 경험을 토대로 고객 관계를 탄탄히 하면서 '토털(Total) AI 메모리 프로바이더(Provider)'로서의 위상을 굳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