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는 것을 골자로 한 인적분할을 단행한 데는 바이오 산업을 삼성전자 다음가는 그룹 핵심으로 키우겠다는 의중이 담겼다.
특히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로 바이오를 꼽았던 고(故) 이건희 회장의 의지를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본격화하면서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건희 회장의 유산, 이재용 '꽃' 피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2일 의약품위탁개발사업을 담당하는 기존 회사를 존속법인으로 하고 바이오시밀러 및 신약개발을 담당하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떼내 이 회사를 지배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하는 방식의 인적분할을 공시했다. 이를 통해 바이오 사업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인적분할은 고 이건희 전 회장 시절부터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 분야를 핵심 계열사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공고히 해오면서 어느정도 예견됐다는 평가다.
고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던 지난 2010년 삼성그룹은 바이오, 태양전지, 자동차용전지, LED, 의료기기 등을 미래 성장동력인 5개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바이오와 자동차용전지는 그룹의 신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보인 것이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출범 이후 줄곧 실적을 끌어올리면서 2022년 이후에는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4조5473억원을 벌어들이며 국내 제약사 중 첫 매출 4조 클럽에 가입했다. 영업이익도 1조3201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삼성 계열사 중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화재, 삼성생명을 이어 5번째로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선대 회장의 바이오에 대한 선견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향후 10년간 바이오 분야에 7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대에 이은 '바이오' 총력이다.
이번 인적분할에는 지난 2022년 당시 의중이 그대로 투영됐다. 신약개발(삼성바이오에피스)과 바이오시밀러(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각 분야별로 투자를 다변화해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청사진을 담은 것이다.
더 나아가 바이오 부문이 최근 경쟁 심화로 부침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의 부진을 메워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핵심 사업영역인 반도체 및 메모리(DS)부문이 부진으로 고전하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바이오의 인적분할은 삼성이 바이오 분야를 전자 못지 않은 주력 계열사로 키우겠다는 복안이 담겼다고 본다"라며 "선대 회장 의지를 이어간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라고 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인적분할을 통해 바이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음이 증명됐다"라고 봤다.

삼성, 중간지주회사 중심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
당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이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 및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하는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구조 안에서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뿐만 아니라 바이오 관련 신사업을 영위하는 신설 자회사도 지배하면서 이 분야를 총괄하게 되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각 사업 영역마다 중간지주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피라미드의최상단에 위치하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전자 △중공업 및 건설 △금융 △바이오 등으로 사업 영역을 세분화하고 각 영역마다 이를 지배하는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구조로 갈 수 있다는 거다. 이 경우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다른 대기업 집단에 비해 계열사 간 출자 구조가 복잡해 지배구조 또한 복잡하고 이것이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라며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최상단을 유지하되 (바이오처럼) 각 사업영역을 지배하는 중간지배구조 형태가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질 지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상 인적분할 후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오르면서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이 강화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그간 업계에서 관측돼온 보험업법 개정 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 가운데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배력 유지를 위해 대신 지분을 사들여야 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 증권사는 인적분할 후 이재용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이 향후 분할된 두 기업 중 한 곳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 쓸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대법원 최종 판단을 앞둔 상황에서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편까지 급하게 속도를 내지는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른 관계자는 "아직 이재용 회장의 재판이 남아있는 만큼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시그널을 주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밝힌대로 바이오 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접근하기 위함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