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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에너지 패권` 향배 달렸다

  • 2014.03.04(화) 17:25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자재 공급 차질 우려 부각
美 주도 셰일가스 혁명·러와의 패권싸움이 방향키

우크라이나 사태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진 후 유독 더 많이 주목받는 시장이 있다. 바로 에너지를 포함한 원자재 시장이다. 한동안 일정 수준에서 등락했던 에너지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후 급등세로 돌아섰다. 곡물가격은 물론 지난해 내내 지지부진했던 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자원 관련 국가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 원자재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우크라이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듯 다른 양상도 펼쳐지고 있다. 유럽에 비해 영향이 덜한 미국이 오히려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눈여겨 볼만 하다.

 

◇ 천연가스 공급으로 유럽 경제 좌지우지 

 

우크라이나 경제는 전 세계 비중이 0.4%에 불과하지만 유로존에 공급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상당부분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한다. 유럽 가스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원유와 달리 유럽에서 소비되는 천연가스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주로 공급되고 공급권을 쥔 러시아가 사실상 가격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통한 공급차질이나 러시아의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가장 직접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물론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과거보다는 낮아진 상태다. 지난해 겨울이 크게 춥지 않은데다 다른 공급원을 일부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가격 변동이 심해지면 유로존 경제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고를 확보해놨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송유관

 

◇ 유가도 급등..광물·농산물 수급에도 영향

 

천연가스 가격과 함께 유가 역시 들썩이고 있다. 영국 브렌트유 가격은 3일(현지시간) 배럴당 112달러를 넘어서며 지난해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원유선물 가격도 지난해 9월말 이후 최고까지 올랐다.

 

유가가 뛰는 이유는 간단하다.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원유로 수요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며 하루평균 생산량은 1위에 빛난다. 따라서 실제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과거 시리아나 리비아 사태 때보다 파급력이 크다.  민병규 동양증권 연구원은 "과거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국면에서 국제 유가의 저항선은 배럴당 110달러였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일시적으로 배럴당 110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원자재 수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철광석 매장량은 세계 8위이고, 석탄은 7위, 망간은 2위에 해당한다. 옥수수와 밀 등 곡물 역시 영향권에 들어 있다. 밀은 전 세계 수출 비중이 5%이고 옥수수는 13%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올해 들어 밀 선물 가격은 5% 가까이 올랐다. 대우증권은 "밀을 주로 수입하는 국가는 이집트와 브라질, 옥수수 주요 수입국은 일본과 유럽연합(EU)에 이어 한국이 3번째"라며 "농산물 가격 변동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올 해들어 금 가격은 12% 올랐다. 실제 수급 변화보다는 수요 증가 여파가 크다고 볼 수 있다.

 

▲ 최근 1년간 국제 유가(WTI)와 금 가격 추이(출처:NYT)

 

◇ 셰일가스 둘러싼 美-러 기싸움

 

흥미로운 점은 그나마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원자재 가격에 미치는 여파는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셰일가스 혁명이 있다.

 

미국의 경우 우크라이나로부터 직접적으로 천연가스을 공급받지 않는데다 지난해부터 불 붙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 붐 덕분에 천연가스 가격 통제여력이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런 미국의 가격 결정력은 에너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에게는 부담이다. 게다가 한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으며 에너지 의존도가 심했지만 최근에는 가스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고 셰일가스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심기도 그만큼 불편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셰일가스 매장량 유럽에서 3번째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장지가 40조 평방피트가 넘어 수십년간의 수요를 충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뒤에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 영향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새로운 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 역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방국들의 지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크라이나의 디폴트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가스시장을 둘러싼 패권다툼이 시작되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며 "셰일혁명 영향력 측면에서 선진국 선호도를 높일 수 있고 에너지 비용 절감 산업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CNBC 등 외신들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에너지 독립에 더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미국의 '셰일 파워'를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美, 러 견제 위해 유가 하락 유도할 수도

 

유독 유가 상승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는데 이 역시 미국이 어떤 전략을 취할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러시아에 결코 밀리기 싫어하는 미국으로서는 러시아 견제를 위해 비군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유가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에 앞서 유가 급락이 선행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이에 비춰 유가 하락이 재현된다면 재고자산 평가손실과 정제마진 축소로 정유업종에 부정적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변동성 확대 자체도 정유와 화학업종 투자심리를 크게 냉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유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과거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시에도 유가가 상승한 경우가 많았다. 동양증권은 단기간 국제유가 강세가 진행되면 정유와 화학업종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투증권과는 정반대의 해석이다. 유가 상승분이 판매 가격에 전이되고 보유재고를 우선적으로 소비하면서 업체들의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과거 리비아 혁명 당시에도 서부텍사스유(WTI)는 30%이상 올랐고 한국거래소 에너지/화학 업종 지수는 28.3% 급등했다. 이란 핵 개발과 시리아 및 이집트 사태로 유가가 올랐을 때도 에너지/화학 업종지수는 오름세를 탔다. 러시아가 글로벌 2월 원유 수출국인만큼 무력 충돌 발생 시 이집트, 시리아 사태때보다 훨씬 파급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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