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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판 골드만삭스 만든다더니

  • 2017.11.02(목) 16:11

정책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업계는 노심초사

증권사하면 전문성과 경쟁력을 겸비한 금융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실상은 큰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다. 주식 거래를 단순 중개해주고 받는 수수료 수입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만의 리그'란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내 증권사 간 수수료 경쟁만 거셌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137개국 중 74위에 그쳤을 정도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는 초대형 IB 인가와 함께 어음발행 업무를, 8조원이 넘으면 종합투자계좌 업무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증권사들은 새로운 업무 인가와 함께 IB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무리할 정도로 자기자본을 늘리면서 조직도 재정비했다. 빠르게 몸집을 키우다 보니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추락했다. 그런데도 새로운 수익원 창출 기대 하나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초대형IB 출범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초대형 IB에만 신규 업무를 허용하면 자금 쏠림현상이 나타나지 않나", "다른 금융권과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나", "건전성엔 문제가 없나"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선 이런 의문들이 쏟아졌다. 지난 1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애초 인가 시점을 넘기고 난 지금에서야 다시 방향성 문제를 걸고 넘어진 셈이다. 

여기저기서 뒤늦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10월 중으로 예정되어 있던 인가 심사 발표도 미뤄졌다. 이달 1일이 돼서야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가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에 대한 초대형 IB 지정안과 함께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단기금융업 인가안을 상정해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안건은 오는 8일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문제는 초대형 IB의 핵심인 발행어음 업무 인가 대상으로 한국투자증권만 올라갔다는 점이다. 삼성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심사가 보류됐고, 나머지 3개사는 심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나머지 증권사들도 순차적으로 인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연내 인가가 어려울 수도 있어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빼앗겼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따라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 온 증권사들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다.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하는 게 맞냐고 물으면 믿고 따라온 증권사는 뭐가 되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자본시장 메기로 변화를 선도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대형 증권사들이 초대형 IB 출범도 전에 순식간에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미꾸라지로 이미지가 추락하자 억울함도 호소한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의 방향성 자체가 흔들리면 위험할 수 있다. 심지어 초대형IB 인가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지는 정책인데 갑자기 방향을 틀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초대형 IB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하는 모험자본이 벤처와 중소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원천 차단하는 셈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논의가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업계를 달래고 있지만, 정부가 정책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인가 후에도 언제든지 업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만큼 업계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는 우물 안에서 파이 나누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넓은 글로벌 시장에 나아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와 업계가 똘똘 뭉쳐도 우물 밖에선 역부족일지 모른다. 정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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