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B투자증권의 경영권 분쟁이 연초부터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이 보유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양자 간 계약에 따라 이병철 부회장이 우선매수권 행사와 함께 1대 주주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권 회장 측은 이 부회장이 아닌 권 회장에게 우호적인 제3자 매각을 원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이병철 부회장, 1대 주주 지분 확보 공시
이 부회장은 2일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권 회장이 보유한 KTB투자증권 주식 1324만4956주를 매수한다고 공시했다.
그러면 이 부회장의 지분율이 기존 14%에서 32.76%로 높아지면서 1대 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기존 최대주주인 권 회장의 지분율은 24.28%에서 5.52%로 낮아진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권 회장과 체결한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권 회장과 이 부회장은 당시 계약에서 각각 이사 추천권을 갖고, 이 부회장이 대표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한편 보유 주식에 대해 상호 양도 제한 및 우선매수권, 매도참여권을 부여했다.
공시에 따르면 권 회장은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을 대상으로 본인 보유 주식의 제3자 매각 의사와 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 매도참여권 행사 여부를 통지했다.
이후 이 부회장이 지난달 29일 매도참여권을 행사하지 않고,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 권 회장 측은 주식 넘길 의사 없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에 오르면 권 회장은 자연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권 회장 측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권 회장은 이 부회장이 아닌 제3자 매각을 원하고 있으며, 주주 계약상 우선매수청구권이 이 부회장에게 있는 만큼 먼저 통지만 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 간 주주 계약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권 회장의 보유 지분을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반면 권 회장 측은 이 부회장이 일정 요건을 수용하지 못하면 이 권리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권 회장의 보유 지분 매각 시 기존에 권 회장이 선임했던 이사회 변경이 필요한데 기존 이사진을 그대로 둘 경우 우선매수청구권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KTB투자증권은 "경영권 분쟁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며 "계약 내용과 관련해 양측의 이견이 존재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권 회장, 대표이사 지위 박탈 염두에 둔 듯
그간 권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에서는 경영권 갈등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다 지난해 권 회장이 갑질 논란으로 체면을 구긴 데 이어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금융감독원은 권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가 확정되면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려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악의 경우 대표이사 자리를 박탈당할 수도 있어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점쳐졌다.
이 와중에 권 회장은 긴급 이사회 소집과 함께 최근 10차례가 넘는 지분 매입을 통해 보유 지분을 늘리면서 경영권 분쟁에 불을 붙였다. 다만 권 회장은 대표이사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고 이 부회장이 아닌 제3자 매각 추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KTB투자증권은 벤처캐피털사인 옛 KTB네트워크가 2008년 7월 증권업 인가를 받으면서 증권업계에 진출했고, 권 회장이 대표이사를 지내며 경영권을 행사해 왔다.
권 회장은 벤처투자와 인수합병(M&A) 귀재로 알려져 있지만 KTB투자증권 출범 후 무려 5차례에 걸쳐 CEO를 갈아치우면서 리더십 논란이 불거졌다. 대부분 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임하며 단명했다.
한편 이번 지분 매각이 성사되면 권 회장은 30%에 가까운 지분 매각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우선매수청구 가격은 주당 5000원으로 지난해 12월 28일 종가(3895원)대비 28.4% 높은 수준이다. 권 회장이 실제로 지분을 넘기게 되면 662억원의 현금을 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