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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워치]성격 규명에만 집착하다간

  • 2018.02.06(화) 09:18

[가상화폐 정의]
엄윤령 법무법인 충정 기술정보통신팀 변호사
"불을 '물질'로 판단했던 오류 타산지석 삼아야"
"절대적 규정보다 사회적합의 담아 성격부여를"

‘불’을 물질로 규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온 물질론은 18세기의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불’이 ‘연소’라는 일종의 ‘분자 활동’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나, 인류는 지난 2000년간 ‘불’을 물질로 보아야 한다는 신념을 확인하기 위해서 엉뚱한 이론들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아직도 ‘불’은 우리 언어에서 동사가 아닌 명사로 남아있다.

 

‘가상화폐’란 무엇일까.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탕주의와 맞물려 가상화폐가 갖는 의미는 그 투자 상품성에만 집중되어온 바, 아직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해할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그 개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가상화폐’의 개념을 섣불리 규정하여 먼 길을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가상화폐’라는 개념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관한 논란을 소개하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가상통화는 가치 교환의 수단이라는 측면에서는 ‘화폐’로, 법정화폐로 구매하는 재화인 ‘상품’으로, 때로는 일정한 이익이나 서비스를 담보하는 ‘증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먼저 가상화폐를 문언 그대로 ‘화폐’라고 이해한다면 고도의 금융 규제를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가상화폐가 널리 유통되면 국책은행 등 법정화폐 발행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니 당장 그 발행부터 규제될 수 있고, 가상화폐 거래소 등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영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고도의 보안조치가 요구될 수 있으며, 가상화폐의 해외 전송 등이 제한될 수 있다. 다만,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에 있어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반대로, 이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우에는 재화의 생성 및 유통에 따른 세금은 부과될 것이나 법정화폐 발행에 따른 금융 규제는 적용되지 아니할 것이다. 한편, ‘금융상품’으로 보는 경우나, ‘증권’으로 보는 경우에는 자본시장법상 강도 높은 규제를 받을 수도 있다.

 

가상통화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이처럼 가상통화에 대한 규율 방법, 과세(부가가치세와 양도소득세, 소득세 및 법인세) 여부뿐 아니라 가상통화 산업의 활성화, 기존 금융권과의 이해관계 등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법무부가 거래소 전면 폐쇄 법안을 내놓겠다는 발표를 한 직후 가상화폐의 시세가 폭락한 바 있고 미국에서도 가상화폐 거래 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는 ‘트럼프 세제 개혁안(Tax cuts & jobs ACT)’이 통과된 직후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즉, 가상화폐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 그 성격을 섣불리 규정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에 의문이 있다. 우리는 ‘화폐’를 기념주화로 보아 ‘상품’으로 구매하거나, 투자대상으로 삼아 환차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상품’도 물물거래 등 교환수단으로 기능하거나 ‘금괴’와 같이 가치저장이나 가치척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가상화폐는 대상 자체에 대한 관찰로 그 성격이 절대적∙보편적으로 규정되는 물리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떠한 성격에 중점을 두고 형성되었는지를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대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상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일찍이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는 비트코인을 화폐로 보는 취지의 판결을 하기도 하였으나 미국 대다수의 주에서는 가상화폐를 상품으로 보아 과세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자금결제법의 개정을 통해 가상화폐를 재화로 보는 입장을 전환하여 화폐로 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유럽에서는 증권으로, 독일에서는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본다.

 

이처럼 각국에서는 가상화폐를 보는 입장에 따라 그 규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견지에서는 가상화폐를 특정한 개념에 국한시켰다기보다는, 상품과 유사한 성질을 갖지만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특수한 것 또는 유사 화폐에 해당하나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되는 것 등으로 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각국의 특색에 맞는 각양각색의 규제를 하고 있다.

 

따라서 가상화폐의 성질 규명에 대한 논란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가상화폐의 성질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법적 성질을 어느 하나의 카테고리에 규정하려는 것 자체가 우를 범하는 것일 수 있는 이야기다. 최근 세금 부과 논란이 일면서 가상화폐의 성격을 속히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러한 규제는 현실적 필요에 따라 각 기관의 입장에 따라 적용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화폐인지, 재화인지에 대한 논란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불’을 원소로 규정한 2000년 전의 플라톤과 같이 엉뚱한 규제를 양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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