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거침없이 올랐던 유가가 주춤하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을 주도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최근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의 시그널로 여겨지고 금리 상승과 함께 신흥국 시장 전반이 조정을 겪은 만큼 유가 향배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 고공행진 후 OPEC 감산 완화 전망에 급제동
한때 배럴당 70달러를 웃돌던 국제 유가는 최근 큰 폭으로 꺾였다. 배럴 당 72.24달러에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서부텍사스유(WTI)는 67달러대로 내려온 상태다.
국제 유가는 2016년 초 20달러 대 중반까지 추락했지만 최근까지 긴 상승 흐름을 지속하며 3배 이상 올랐다. 여기에는 글로벌 경기 상승과 함께 OPEC 회원국들의 감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내달 OPEC 정기총회에서 원유 감산을 차츰 완화할 것으로 점쳐지면서 유가 상승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감산 참여국들이 일일 100만 배럴의 산유량을 확대하는 것을 논의했으며 실제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은 유가가 너무 오르면서 수요가 둔화되고 다시 유가가 내리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 인플레 우려 완화…금리도 상승 속도 조절
유가 하락이 반갑지 않을 수 있지만 최근 미국 금리 상승과 함께 신흥국 증시 전반이 조정을 받아왔던 만큼 긍정적인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인플레 상승과 함께 동반됐고 유가 상승이 결정적인 지표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가 하락하자 3%를 웃돌았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9%까지 내려왔다. 유가가 진정되면서 조정 폭이 컸던 신흥국 증시를 중심으로 반등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 기대는 여전히 높은 상태지만 유가 상승이 주춤할 경우 기대는 일부 완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5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연방준비제도 위원들은 금리 인상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물가지표가 2%를 상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SK증권은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나 높아진 유가가 금리 하락을 제한하고 있지만 유가를 따라 금리가 다시 2%대로 낮아진 것은 주식 시장 입장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작년 국제 유가 패턴이 상반기 하락, 하반기 상승이었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는 자연스럽게 전년 동월 대비로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6월부터는 국제 유가 기저효과가 약화될 것으로 보여 금리 상승세도 점차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 급락보다는 안정화 무게
이처럼 신흥국 증시 흐름과 맞물리면서 향후 유가 방향성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일단 감산 완화 시 유가 상승세가 일부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산유국들의 경우 유가 안정을 원하면서 유가가 다시 하락세를 탄다면 상승을 유도하려는 움직임 또한 나타날 것이란 분석에서다.
미국의 이란 제재 가능성 역시 유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앞서 미국은 이란 핵 협정에서 공식 탈퇴했고 향후 3~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히면서 유가를 끌어올린 바 있다.
큰 폭의 하락보다는 제한된 상승 쪽에 무게가 실린다. KB증권은 "6월 OPEC 총회에서 감산 축소에도 감산 기간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며 연말까지 WTI 기준으로 배럴당 75달러 선까지 완만히 상승하는 흐름을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