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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한일 갈등 결말은? "국내 경제 정상화 기회"

  • 2019.08.08(목) 16:14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인터뷰
"안보·역사 뒤섞여 세계적으로 특이 케이스"
"단기간 해결 난망…무역 다변화 이뤄내야"

한일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미쓰비시 중공업 한국 내 자산 압류 판결에 이어 일본 초계기 사건이 일어났고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까지 양국 간 강 대강 국면이 연이어 연출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반일 시위가 개최되고 산업계에서는 탈일본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크다.

무역 이슈에 역사 안보 이슈가 한 데 뒤섞이면서 시장에서는 문제 해결 방법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불안감은 날로 커져 최근 며칠간 증시는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전체 그림을 조망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비즈니스워치는 현 사태 진단을 위해 지난 6일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구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통상정책 전문가다.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같은 학교 행정대학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을 거쳐 UC버클리 정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구 교수는 이번 한일 갈등을 국내 경제 구조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제2의 부품소재 파동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미중 무역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하는 가운데 한일 분쟁도 해결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현 사태를 진단한다면
▲ 한일 간 무역분쟁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하이닉스 반도체 상계관세 분쟁이 있었고 최근에는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크게 되지 않았고 관리가 원만하게 이뤄졌다. 이번 무역분쟁이 주목받는 것은 안보 역사 이슈 등이 전방위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특이한 케이스다. 문제는 이슈별로 끌어당기는 힘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모든 이슈를 꿰뚫는 종합적 접근방식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 무역 이슈가 갈등 전면에 나오는 이유는
▲ 무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많은 국가의 무역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 한국의 수출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일본도 30% 가까이 된다. 미국과 중국도 예전에 비해 크게 확대됐다. 일본이 무역 규제 카드를 꺼내 든 것도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은 환경 인권 등 기타 이슈와 연계할 수 있다. 취약점을 공략한 측면이 크다.

- 규제가 생기면 일본 기업이 수출에 장애를 겪는 것 아닌가
▲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조치다. 외국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국 기업을 희생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일본 정부가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중 무역분쟁과 마찬가지다. 손해 보는 것은 결국 소비자인데 자국 소비자 피해보다 상대국이 입는 피해가 더 크다면 감행하는 것이다.

- 일본 정부는 안보상의 조치라고 주장한다
▲ 아베 정부의 목표는 평화헌법 9조를 개헌해서 자칭 보통국가가 되는 것이다. GDP의 1%로 제한되어 있는 국방비 족쇄를 풀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위안부 문제에 이어 강제징용 배상 문제까지 연달아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은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의 위안부 문제 제기로 국제사회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역사 문제를 역사 문제로 받으면 일본이 밀릴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참고로 삼았을 법한 사례가 있다. 1990년대 중반 UN해양법협약 체결 과정에서 독도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역사 교과서 문제도 터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발언한 것이 이 시기다. 1997년 여름 일본 시중 은행들은 일제히 단기외채를 회수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국내 은행의 자금 흐름이 역전되면서 외환위기가 촉발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 실제 금융 분야로 전장이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외환위기 당시 일본 은행의 조치는 세계 분위기 속에서 묻어간 측면이 적지 않다. 금융 분야에 독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국가는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하다. 일본 정부가 금융 분야에서 추가 규제를 감행한다면 그간 쌓아 온 명성을 잃어버리는 자충수를 두는 셈이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지만 가능성 자체는 희박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추가 규제 등이 거론되는 것은 국내에 불안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 적절한 대응 방안은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분업 체제 시각에서 일본 정부의 행보는 불합리한 면이 많기 때문에 맞대응하면 같은 꼴로 비칠 수 있다. 아직 가시적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일본이 잘못했다는 명백한 결론이 나온 뒤 합법적 제재 조치를 취해도 늦지 않다. 일본 정부는 안보 차원의 조치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근거가 없다. 핵물질이나 미사일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금기시되는 중대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에야 가트(GATT,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 일본 정부도 말이 안 되는 조치라는 것을 알 텐데
▲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 판결을 내렸을 때 일본은 일차적으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도(ISD)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었다. 물론 많은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정부가 나서면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데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게 된다. 물론 판결은 어느 쪽에 유리할지 모른다. 일본 정부가 ISD 과정을 생략했다는 점에서 초조함이 묻어난다고 본다. 정권 유지 등이 고려됐을 것이다.

- 애초에 일본 공격에도 끄떡없는 체질을 갖췄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공화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다시피 했다. 단순히 왕이 없는 상태를 공화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공화주의 정신이 뿌리내리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할 수 없다. 소재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대기업 중심으로 판이 짜였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 중심의 경제가 아니었다면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 문제 해결이 급물살 탈 가능성은
▲ 아베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는 동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베라는 개인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총리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향후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지만 최소한 1년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바닥을 치고 반등해 정상화로 가는 기회가 마련되리라 기대한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는 것은 주권국가임을 포기하는 행위다. 일본이 싫어도 우리는 옆에서 살아야 한다.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이해는 해야한다. 상대 국가에 대한 존중은 근대 체제에서 기본적인 요소다.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근육을 키워야 한다. 미국이 한일 분쟁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중재를 선 이력도 없다. 1960년대 한일수교 협상이 지연될 때도 미국 정부는 물밑에서 희망 의사를 타진했을 뿐이었다.

- 미중 무역분쟁은 환율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 미중 분쟁은 'G1'을 노리고 다투는 패권 경쟁이다. 중국은 유럽과 같이 미국과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과거 미국과 패권 경쟁에 나선 소련과 달리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턱밑까지 좇아왔다. 미국은 중국에 뒤처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도 중국을 변화시키겠다는 서로가 인질인 상황에서 내 말 좀 들어라 주장하고 있는 꼴이다.

미국은 자본주의 이식으로 중국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내부적으로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바뀐 입장은 오랜 기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 하의 중국이 방향을 전환할 거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 중 한 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패권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 한국의 추가적인 잠재 위험요소는 없을까
▲ 중국이 문제다. 한국 전체 무역 규모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량이다. 치명적으로 높다. 만약 중국이 작정하고 한국을 손보겠다고 나서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사드 이슈로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는가.

소재 국산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전략 물자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산 투입해서 소재 국산화에 나서면 다른 소재 분야도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나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지금 상황에서 파국을 피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 한일 간 갈등을 우리 경제구조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베 정권이 광장을 마련해 준 꼴이다. 시급한 것은 무역 다변화 정책이다. 한국은 무역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 곳과 교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아세안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가량이다. 다변화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감내해야 한다. 제2의 부품소재 파동, 제2의 사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분산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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