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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日운용사 베테랑 "퇴직연금 사회적 합의 필요"

  • 2019.09.27(금) 16:31

스기타 코우지 日증권경제연구소 펠로우
韓연금시장 환경 비슷한 日서 50년 경력
"日 디폴트옵션, 정부 장려 조치 영향 커"

퇴직연금 시장에 대한 운용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 고갈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고, 개인연금은 빠듯한 저소득 근로자에게 언감생심, 그나마 퇴직연금이 각광받고 있지만 수익률 저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운용 업계에선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디폴트옵션 도입을 촉구한다. 디폴트옵션이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을 때 미리 정해 놓은 투자 상품에 자동 가입하게 하는 제도다.

운용사들은 퇴직연금 운용에 최적화한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출시하면서 디폴트옵션 도입을 준비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다. 제도 도입 이후 손실 책임을 누가 떠안게 될 것인가를 놓고 관계자 사이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50년 이상 운용업계에서 근무한 스기타 코우지(杉田浩治) 일본증권경제연구소특임 리서치 펠로우는 디폴트옵션 도입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 운용에 대한 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6일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참석을 위해 서울 여의도를 방문한 스기타 씨는 비즈니스워치와 만나 일본 연금시장이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노무라자산운용 기획부장과 뉴욕법인 사무소장 등을 역임했다.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기타코우지 일본증권경제연구소특임 리서치 펠로우 /사진=이돈섭 기자

- 일본 연금 시장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자면
▲ 노후자금은 30년 안팎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예적금으로는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는 0.01% 수준이다. 100만 엔 넣으면 1년 이자가 100엔 붙는 것이다. 일본 공적연금도 문제다. 현재는 2명이 1명을 부양하는 구조이지만 인구 고령화가 진척됨에 따라 5년 후에는 1.2명이 1명을 맡게 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사적 연금 시장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 일본은 2001년 DC형 연금 시장 확대를 위해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도입에 따른 잡음은 없었을까
▲ 2001년 도입 당시 디폴트옵션 적정상품 중 하나로 원금보장형 상품을 포함시키도록 명시했기 때문에 노동계 측의 반발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7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30%가 디폴트옵션 적정상품을 선정했는데 그중 70%가 원금보장형 상품을 선정해놓고 있었다. 운용 손실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었던 셈이다.

- 원금보장형 상품을 적정상품으로 명시하면 DC형 연금 시장 확대라는 제도 도입 취지가 희석되는 것은 아닌가
▲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법령을 개정해 원금보장형 제시의무를 폐지한 이유다. 정부는 여러 상품을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위험 요소 분산 운용방식 도입을 촉진하는 데 정책 취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디폴트옵션 적정상품 선택 권한은 현재 기업이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 투자일임계정 등 특정 투자 상품을 지정해 이 상품을 채택하는 한 운용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고 있는데 이와는 다소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 별도의 투자 촉진 정책이 마련되어 있나
▲ 2015년 주식투자촉진 정책의 일환으로 니사(NISA, Nippon Investment Savings Account)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매년 120만엔 규모의 주식 및 주식형 펀드 투자에 대해서는 5년간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제도다. 일본만의 독특한 정책이다. 지난해 말 계좌 보유 인구는 1250만명, 투자 잔고는 8조엔 정도로 집계됐다. 일본 성인 10명 중 1명이 계좌를 갖고 있는 셈이다. 목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사진=이돈섭 기자

- 일본 정부가 투자를 권장하게 된 배경은
▲ 일본 기업은 오랜 기간 은행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해 왔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는 비중은 작았다. 90년대 후반 일본 주요 은행 실적이 고꾸라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자금조달을 은행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때부터 자본시장 역할이 대두됐다. 시중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옮기기 위해 은행이 펀드를 판매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북미 유럽 등에 비해 가계 자산 중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비판도 주효했다.

- 지금의 DC형 연금 운용 방식에 대해 만족하는가
▲ 일본 기업 근로자들은 DC형 연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입 의사를 밝혀야 한다. 영국은 근로자가 가입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가입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DC형 연금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국과 같은 자동 가입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노후 자금 마련은 노력 없이 불가능하다.

-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할 것 같다
▲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일본 TOPIX의 배당 포함 수익률은 9.6%다. 같은 기간 일본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11.8%다. 과거 디플레이션 시기를 지나면서 기업 실적이 개선된 영향이 크다. 일본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마련하는 한편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작업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장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띄게 될 것이다.

-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은 다른 나라 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비판이 있다.
▲ 주주가치 향상을 위해 배당을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의 일류 IT 기업의 경우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기업이 번 돈을 새 분야에 투자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도 기업 주가는 오른다.

- 분산 투자 전략의 일환으로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 펀드 투자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분산 전략이다. 해외 투자는 해당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운용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GDP 성장률은 3% 정도 가량이다. 분산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면 연 3% 가량의 수익은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해외 투자의 경우 외국 운용사에 위탁해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로벌 분업 체계를 통해 프로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아직 완고해 보인다
▲ 일본은 과거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개인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 됐다. 리츠 펀드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15조엔 정도로 주식 약 500조엔에 비해 작은 규모다.

- 장기 투자를 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좀처럼 갖추기 힘들다
▲ 연금은 짧은 시간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내는 펀드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까지 내다봐야 한다. 저성장 시대와 장기 투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은 근로자 대상으로 연금 교육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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