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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당신의 퇴직연금은 안녕한가요?

  • 2019.10.18(금) 14:05

퇴직연금 제도 도입 후 고질적 低수익
이랜드그룹·SK텔레콤 제도 운영 눈길
전문가 "기업 패러다임 바꿔야" 주장

혹시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운용은 잘되고 있나요? 고령화 저출산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무성한데 앞으로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가늠하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3층 구조로 구성된 우리나라 연금 복지 제도 중 국민연금은 고갈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고요. 개인연금은 저소득 근로자에게 언감생심입니다. 퇴직연금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운용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퇴직연금 제도는 기존 퇴직금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됐습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일정액을 금융기관에 적립해 근로자가 퇴직할 때 수령토록 한 제도입니다. 퇴직 후 매월 나눠 받을 수 있고 한꺼번에 지급받을 수도 있어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목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퇴직금 제도는 기업이 도산하면 지급 주체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고 기업이 퇴직금을 보관하다 다른 곳에 사용할 소지가 있어 향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지만, 퇴직연금은 외부에 쌓아두기 때문에 기업 존폐와 상관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다양한 투자 상품을 통해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운용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퇴직연금 종류가 달라지는데 기업이 운용해 일정금액을 제공하는 형식을 확정급여(DB)형, 근로자가 자유롭게 운용하는 방식을 확정기여(DC)형이라고 합니다.

이왕 운용하는 거 수익률 높은 펀드에 가입해 연금 규모가 배로 불어나면 좋겠지만 실상은 기대와 전혀 다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DC형 연간수익률(총비용 차감 후)은 0.44% 수준에 불과합니다. DB형도 1% 남짓한 수준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7% 수준이었으니 투자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약 190조 원. 거대 자금을 운용한 결과가 이 정도라니 답답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퇴직연금이 아무래도 노후자금 성격이 강해 근로자들이 안정적 운용전략을 선호한 결과 수익률이 낮아진 것이라는 설명이 있고요. 대부분 전문가가 문제의 핵심으로 꼽는 것이 투자자 무관심입니다.

"공장 근로자를 만나보면 퇴직연금 관심 없어요. 얼른 퇴근해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게 중요하지. 원래 먼 미래 일은 체감하기 어렵잖아요. 막상 닥쳐야 실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그런데 뭔가 찝찝합니다. 누군들 자기 노후자금 잘 운용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퇴직연금의 주인은 하루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근로자입니다. 시간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평소 투자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따로 공부해야 하는 판인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럴 때 기업이 직원 복지 차원에서 퇴직연금 운용에 꼭 맞는 투자 상품을 찾아주는 전문가를 고용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퇴직연금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단한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상담이라도 받으면 좋겠다는 직장인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자가 업계를 살펴보니 전문 인력을 고용해 서비스하는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랜드 그룹과 SK텔레콤입니다. 많은 기업이 재무파트에 퇴직연금 지원업무를 맡기고 있는 것과 달리, 두 기업은 전문 인력을 통해 투자 상품을 제안하고 투자 교육과 상담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이랜드 그룹의 경우 2012년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이후 2015년 관련 부서를 통합해 전담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직원들의 투자 성향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사내 시스템을 구축해 개별 성향에 맞는 투자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투자 상품 중 알짜를 골라내기 위해 독자적 평가 툴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투자 상품의 수익률은 물론 퇴직연금 사업자의 기업 방문 및 상담 빈도수 등이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상품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보를 선별해 양질의 상품을 추천하는 식입니다.

전담 부서 운영 후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 태도입니다. 사내 추천 상품 명단에 본인들의 상품을 올리기 위해 담당자를 찾아오기 시작한 겁니다. 로비에 부스를 설치해 설명회를 열고 불만 접수에도 적극적입니다.

이랜드 관계자는 "판매사 내부 KPI(성과지표) 등 영향으로 실제 운용 실적이 좋지 않은 상품을 끼워 넣거나 실적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곳들이 여전히 많아 경계하고 있다"면서 "반기에 한 번씩 꼭 전체 사업자 평가와 운용 리포트를 작성해 사내 전체에 공유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전담 부서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투자의 최종판단은 개별 직원의 몫입니다. 사내 제공 정보 말단에는 '담당 부서의 ○○○가 추천한 상품일 뿐'이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의 어려움을 모른체하지는 않습니다. 투자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기업 입장에서 퇴직연금 전문가를 배치해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금융회사에 위탁비용도 들어가는 것도 부담인데 여기에 비싼 인력까지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비용이 배로 들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도 않고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은 우리나라 전체의 40%가 안 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랜드 그룹과 SK텔레콤이 추구하는 방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기업이 근로자를 비용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퇴직연금 운용에 따른 수고는 당연히 기업이 맡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내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교육에 대한 책임은 법적으로 기업주에게 있지만 외부 위탁이 가능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라면서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한 비용 투입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도록 기업이 새로운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인건비 지급에 허덕이느라 퇴직연금 제도 도입조차 못 하는 영세기업이 제도 혜택을 누리게 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한곳에 모아 덩어리째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요. 관련 세제혜택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있습니다.

현재 퇴직연금은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자산 비중이 70%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100%에 가깝게 확장해 개인 성향에 꼭 맞는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국가 공인 퇴직연금 교육 전문가를 양성해 투자 교육이 필요한 사업장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빼먹을 수 없습니다.

막연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실질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르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분석들이 눈에 띕니다. 예·적금만으로 충분한 노후자금을 조성하는 건 분명 옛날얘기입니다. 퇴직연금이 잘 운용되고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고, 기업들도 더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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