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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세계]조직 성과주의의 역설

  • 2020.07.17(금) 14:41

조직 성과 강조 부작용…은행 DLF 사고 연상
기본 취지 긍정적…리스크 관리 더 신경써야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고와 뭔가 비슷하지 않아요?"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로 요즘 금융투자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업계를 대표하는 대형 증권사들이 라임과 옵티머스 같은 문제의 사모펀드들을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어치 팔아 판매사 책임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죠.

증권사가 사모펀드를 팔기 시작한 건 하루 이틀 전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고액자산가 풀이 넓은 대형 증권사들은 사모펀드 판매에 있어선 이미 베테랑이죠. 그런 대형사들이 소규모 사모펀드 운용사의 사기 행각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게 언뜻 쉽게 이해가 가진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업계 일각에서 이번 사태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하는 조직 성과주의의 부작용은 주목할만합니다. 개인보다 조직 성과를 우선시하다가 의도치 않게 부실 상품을 대규모로 팔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금융권을 흔들며 사모펀드 사태의 시발점이 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DLF 사고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과도한 조직 성과 독려가 사고의 단초가 됐습니다. 은행 전체 경영계획에서 DLF 판매 목표를 높이는가 하면 본점 차원에서 하루가 멀다고 영업본부에 실적 달성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조직 성과 향상에 고삐를 죄다 탈이 난 것이죠.

일반적으로 증권사는 은행과 비교해 성과의 무게를 조직보다 개인에 싣습니다. '예대마진'처럼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익원을 보유한 은행과 달리 증권사들은 변동성이 큰 업권 특성상 '각개격파' 형태로 적극적인 영업을 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수익 기반이 탄탄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를 시작으로 은행처럼 조직 성과를 점차 중시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는 모습입니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 대형사들은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성과 평가 방식을 조직 위주로 손질했습니다.

업계의 영업 패러다임 변화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전통적 수익원이던 주식 위탁매매(브로커리지)를 대신해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 등의 수익 비중이 높아지면서 소위 개인기보단 팀워크가 더 중요해진 거죠. 대형사는 중소형사와 비교해 조직력이 뛰어난 만큼 성과를 내기도 유리합니다.

회사 입장에선 성과 압박에 따른 직원 개인의 과도한 영업활동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죠. 과잉 영업이 고객의 불만을 초래하고 자칫 예상치 못한 금융사고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건 이미 다양한 사례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가 리테일 파트를 중심으로 개인 인센티브를 축소하고 조직 차원의 인센티브를 늘리는 추세"라며 "경영진으로선 일선 지점이 예전처럼 주식 영업이나 상품 판매로 큰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괜히 무리하게 영업을 했다가 사고를 일으켜 회사 전체 평판이 나빠지는 걸 더 경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NH투자증권은 대형사 중에서도 조직 성과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에는 업계 최초로 WM 영업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없앴습니다. 기존 KPI가 업무 실적을 수치화해 직원들의 실적 압박을 가중시키고, 결과적으로 고객 불편을 초래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적 악화, 인센티브 감소 등에 대한 우려에도 NH투자증권의 과감한 시도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고, 지금껏 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랬던 NH투자증권이 '제2의 라임사태'로 불리는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고의 당사자가 됐는데요. NH투자증권은 지난 5월 말 기준 옵티머스 펀드를 4500억원 넘게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판매액의 88%를 혼자 판 겁니다. 통상 업계에선 한 판매사가 사모펀드를 500억~1000억원어치 팔면 잘 팔았다고 부러움을 산다고 하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NH투자증권의 판매액은 엄청난 거죠. 그만큼 이 상품이 괜찮다고 봤을 겁니다.

업계에선 이번 사고를 두고 NH투자증권의 조직 성과주의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NH투자증권 WM 영업 직원들 사이에 옵티머스 펀드가 제아무리 좋다고 소문이 났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본사 또는 본부 차원의 지시가 없인 이렇게까지 몰아서 팔 순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앞뒤 안 가리고 나쁘게 볼 사안은 아닙니다. 증권사는 수익을 내야 먹고살고 그래야 직원들에게도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갑니다. 옵티머스 펀드를 만든 옵티머스자산운용이 공공기관 매출채권 같은 우량자산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뒤로는 부실 사모사채를 잔뜩 사들인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NH투자증권이 조직적으로 펀드를 많이 팔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옵티머스 펀드는 작정하고 만든 사기 상품이었고, NH투자증권은 국내 굴지의 증권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꼼짝없이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도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상황입니다. 사모펀드 제도와 시스템 자체의 미비를 감안하더라도 NH투자증권 스스로 리스크 관리에 일정 부분 허점을 드러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금융투자업계 전반의 조직 성과주의 추세에 제동이 걸려선 안됩니다. 과도한 성과주의에 따른 불완전판매를 막고 고객을 보호한다는 기본 취지를 고려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본보기로 삼아 조직 성과주의를 좀 더 다듬고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잦은 주식매매에 따른 수수료 수익이 대부분이던 기존 증권사 영업 관행에서 탈피해 선진화된 자산관리 영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나서 아쉽다"면서 "이번 일을 조직 성과주의를 성숙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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