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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세계]하이리스크 없는 하이리턴은 없다

  • 2020.07.15(수) 14:27

'그들만의 리그' 사모펀드…투자자는 위험성 몰랐나?
위험 수준 감내하기 어렵다면 아예 피하는 것도 방법

한국형 헤지펀드'는 10년 전 기업의 창업‧성장‧회수 생태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매개체로 출발했다. 이후 전문운용사들이 출현하면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의 대가는 잇단 사건사고라는 혹독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K팝 열풍에 비견됐던 사모펀드의 존재감은 어느새 사기판, 복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태생과 총체적 부실 우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자들의 책임론까지 복잡다단한 사모펀드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편집자] ​​​​​

'본 상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지 않으며,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서 원본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투자신탁은 운용결과에 따라 이익 또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투자자에게 귀속됩니다.'

여느 사모펀드 투자제안서의 투자자 유의사항에 반드시 나오는 문구다. 금융당국의 꾸준한 규제 완화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는 하나 사모펀드는 여전히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자상품은 아니다. 

낮아진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일반 투자자라면 적어도 1억원 이상은 넣어야 하는데, 살림살이가 빠듯한 일반인들이 선뜻 이 거액을 하나의 상품에 '몰빵'한다는 건 상식적이진 않다. 보통 최소 수억원의 여윳돈을 지닌 자산가들이 플레이어로 참여한다. 사모펀드 시장을 두고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게다가 사모펀드의 경우 위험과 수익은 비례한다는 투자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High Risk·고위험) 하이 리턴(High Return·고수익)' 상품이다. 애초에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뛰어드는 게 사모펀드 시장이다.

라임이나 옵티머스, 헤리티지 등 최근 연이어 사고가 발생한 대다수 문제 사모펀드의 경우 통상 우리가 아는 사모펀드들보단 기대수익률이 낮은 대신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으로 소개됐다. 판매사들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고객들을 끌어들인 정황이 포착됐다. 돈 굴릴 데가 마땅찮던 투자자 입장에선 충분히 혹할만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모펀드 투자제안서에 명시된 투자자 유의사항

그러나 사모펀드는 사모펀드다. 투자제안서에 명시된 것처럼 투자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손실의 위험을 안고 있다. 투자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원금을 보장하는 은행 예적금 상품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상품과 비교해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투자했다고 보긴 어렵다. 금융투자회사들이 개별 상품의 운용 또는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들을 속였는지는 분명 법적으로 따지고 넘어가야 하지만 사모펀드에 가입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투자자 역시 책임에서 100% 자유로울 순 없다.

이 와중에 사모펀드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데만 신경 쓴 나머지 투자자 교육과 보호제도 마련에 소홀했던 금융당국은 사고가 터지자 판매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라임이나 옵티머스처럼 운용사의 잘못이 명확한 사고는 물론이고 불완전판매 여부를 명확히 가려야 하는 사고 역시 판매사에 일단 보상부터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사고를 친 운용사들은 이미 피해 복구가 어렵다 보니 금융당국이 판매사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앞으론 자칫 사모펀드 사고가 터지지만 하면 잘못을 '묻기도 따지기도 전에' 판매사가 무조건 보상하는 관행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판매사 직원들 사이에선 '이럴 거면 사모펀드를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낫겠다'라는 푸념이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되자 은행권을 중심으로 사모펀드 판매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사모펀드 시장의 위축은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 저금리·저성장의 고착화로 가뜩이나 괜찮은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의 좋은 투자처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시장 전반을 들여다보고 규제를 손보겠다고 한 건 일단 고무적이다. 다만 운용 내역이나 전략 등을 세세하게 공개할 의무가 없는 사모펀드의 '비밀주의' 특성상 당국이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마련하는 와중에도 비슷한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스스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모펀드라는 상품에 대해 좀 더 정확히 파악 후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 옵티머스 사례에서 드러났듯 현행 사모펀드 시스템상 운용사가 작정하고 사기를 친다면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는 물론 판매사와 수탁회사, 사무관리회사 등도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다. 사후에 법적 책임을 따지다 보면 자칫 가장 힘없는 투자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사모펀드의 위험 수준을 감내하기 어려운 일반투자자라면 아예 사모펀드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높은 수익률만큼이나 다양한 위험성을 내포한 게 사모펀드"라며 "이 부분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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