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1년 8개월간 거래가 정지됐던 신라젠에 대해 상장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거래 재개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소액주주 숫자가 17만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거래 재개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던 시장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거래소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들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사측이 적극적으로 이의신청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다 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가 개선 기간을 부여하며 다시 기회를 줄 수도 있는 만큼 최종적으로 상장폐지로 결론이 날지는 두고 봐야 할 전망이다.
거래소 "개선 계획 이행 미흡"
거래소는 지난 18일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를 열어 신라젠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기심위는 사측의 개선 계획 이행 정도가 미흡하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젠은 지난 2020년 11월 기심위로부터 개선기간 1년을 부여받았다. 기심위는 사측에 최대주주 교체 등 지배구조 개선 내역과 더불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영업 관련 개선 계획을 요구했다.
이에 신라젠은 개선 기간이 끝난 지난달 21일 개선 계획에 대한 이행내역서를 기심위에 보고했다. 사측은 지난해 5월 엠투엔이 새로운 최대주주로 등장한 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등 개선 계획을 이행해왔다.
그러나 실적 부진의 숙제는 풀지 못했다. 신라젠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누적 131억원의 영업손실과 8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매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73%가량 줄어든 2억3447만원에 그쳤다.
신라젠 "수용 불가…적극 소명할 것"
신라젠의 최종 상장폐지 여부는 기심위를 떠나 코스닥시장위원회(시장위)로 넘어가게 됐다. 기심위 결정 후 20영업일 이내에 열리는 시장위는 상장폐지 또는 개선 기간 부여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8일 이전에 신라젠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시장위가 최종 상장폐지를 결정하면 신라젠은 정리매매를 거쳐 상장폐지된다. 그러나 사측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시장위에서 상장폐지가 최종 결정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신라젠 관계자는 "그간 개선 계획을 충실히 이행해온 만큼 이번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심위의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하고 시장위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코오롱티슈진 사례 따를 듯…소액주주 소송 움직임
증권가에선 앞서 기심위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코오롱티슈진이 시장위에서 두 차례 개선 기간을 부여받으며 상장폐지를 면하고 있는 만큼 신라젠 역시 비슷한 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은 2019년 5월 거래 정지 후 8월 기심위에서 상장폐지 통보를 받은 뒤 시장위로 넘어가 2019년 10월 12개월의 개선 기간을 부여받았다. 1년의 개선 기간이 지나고 열린 시장위에서 또 한 번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사측이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에 나선 뒤 시장위는 두 차례 속개를 거듭하며 2020년 12월 1년의 개선 기간을 재차 부여했다.
지난해 12월 개선 기간이 끝난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7일 개선 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한 후 또 다시 시장위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코오롱티슈진과 마찬가지로 신라젠도 상장폐지 수용 불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의신청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상장폐지 여부가 최종 결정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시장위에서 최종 상장폐지를 결정하더라도 신라젠이 이에 대해 불복 소송을 내면 기나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거래소 기심위의 상장폐지 결정에 뿔난 신라젠 소액주주들은 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0년 말 기준 신라젠의 소액주주는 17만4186명, 주식 수는 6625만3111주(지분율 92.60%)에 달한다.
이성호 신라젠 소액주주모임 대표는 "지난해 이미 법률 검토를 받아둔 상태"라며 "이번주 내로 소송에 참여할 주주들을 모집해 변호사 선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주 중으로 신라젠 주식 거래를 방해한 혐의로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을 상대로 한 고소장을 접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