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사실상 3연임에 성공하며 회사내 역대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할 전망이다. 대표이사 취임후 실적 고공행진을 이끄는 등 확실한 성과를 낸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었던 옵티머스 사태는 오히려 정영채 사장에게 또 다른 기회를 부여했다. 임기중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고에 대해 결자해지의 자세로 매듭지으라는 회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임기부터는 정영채식 리더십이 제대로 된 평가대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긴축·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치면서 금융시장의 난이도가 과거에 비해 차원이 다르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적이 예고한 3연임
지난 2일 NH투자증권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정영채 현 사장을 대표이사 단독 후보로 추대했다. 오는 23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연임 여부가 최종 확정된다. 다만, 경쟁자가 없는 만큼 3연임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대표 이사 선출 직후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회사의 성장을 이끈 점이 세번째 임기의 밑거름이 됐다. NH투자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1조3000억원, 9500억원 수준으로 취임 첫 해 기록한 4908억원, 3241억원 대비 약 3배 가량 커졌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개인 투자 열풍이 이는 등 우호적인 업황을 만난 탓도 있지만 기회를 잘 살려 회사의 내실있는 성장을 이끈 것도 리더의 역량으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다.
정영채호의 선전에 최대주주인 농협금융지주는 통 큰 지원으로 화답했다. 지난해 10월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이번 1분기에는 4000억원을 더 밀어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증자가 완료되면 NH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7조원 가까이 늘어난다. 증권업계 2위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는 한편, 1위 자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로 격상이 가능할 전망이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의 개선과 함께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서의 경쟁력 강화, 사업 영역 확장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번째 임기를 앞두고 있는 정영채호의 든든한 실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옵티머스 사태' 결자해지
정영채 사장의 3연임에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였던 옵티머스 사태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 수습을 위해 꾸준히 대응하면서 깊어진 이해도와 지속성 있는 대처가 요구되는 점이 연임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옵티머스 사태는 정영채 사장의 두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난 2020년 터졌다. NH투자증권은 펀드 전체 환매중단 금액인 5146억원의 84%에 달하는 4327억원을 판매하면서 주 판매처로서 책임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NH투자증권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100% 피해 보상을 해주기로 결정했지만 회사는 지리한 법적 공방에 휘말리게 됐다. 다만 정 사장은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한 사기·배임 고발에 대해 지난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CEO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아직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명시된 내부통제기준 위법 사항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남아있고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회사 예탁결제원에 손해배상 및 구상금 청구소송이 진행중이다. 사건 발생부터 수습을 진두지휘한 정 사장의 리더십이 대체되기 힘든 상황이다. 치명적인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 셈이다.
이제는 진가 발휘해야 할 때
다시 한 번 운전대를 잡게 된 정영채 사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강력한 긴축 정책과 함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경영환경 난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간의 성공 가도는 코로나19 이후 촉발된 투자 열풍이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크다. NH투자증권이 지난해 3분기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순영업 수익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다.
그 중 주식 위탁매매(브로커리지)가 약 29%로 압도적인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당시 누적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은 2020년 동기 대비 21%이상 증가하며 NH투자증권의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만큼 개인 투자자들의 공헌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올들어 금융투자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부양책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유동성 보따리를 풀었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연준은 양적 긴축 및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더불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우발적인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면서 자산가격에 치명타를 안기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도 대세 상승장 때와 달리 급감하는 등 영업 환경도 악화됐다.
정 사장의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을 시점에 온 것이다. 물론 그간의 시장 상황도 녹록치는 않았다. 2018년에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됐고 이듬해에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숱한 파고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번 파고는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번째 임기를 목전에 둔 정영채호가 과연 어떻게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인지 업계와 주주들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