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주식(K-OTC) 시장 거래대금이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비상장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제도권 채널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자보호를 이유로 비상장주식 중개 채널의 활로를 쉽게 터주지 않고 있어서다.
비상장주식 시장 규모가 커지는 등 성장 가도인 이들 플랫폼과 제휴를 노리던 증권사들은 맥이 빠졌다. 채널 확대는커녕 기존 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단 당국의 강경 스탠스가 확인되면서 '플랜B'를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비상장주식 시장 '들썩'…투자자 선점 기회 노린 증권가
5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사업자인 피에스엑스와 두나무에 대해 금융투자업 인가없이도 비상장주식 거래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이달 1일자로 2년 연장했다.
피에스엑스와 두나무는 앞서 2020년 4월 혁신금융사업자로 지정돼 온라인상에서 비상장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내 증권사와 제휴를 맺어 투자자가 증권사 시스템상에서 주식·대금이체 등을 결제하게 했다.
제도권인 K-OTC를 제외하고 사설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인 외부 비상장주식 플랫폼에 거래 계좌를 제공하는 국내 증권사는 현재 두 곳 뿐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서울거래 비상장'을 운영하는 피에스엑스와, 삼성증권은 '증권플러스 비상장'을 만든 두나무와 제휴를 맺어 해당 서비스를 하고 있다.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에서 직접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연결하거나,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계좌를 연동하는 식이다.
이들 플랫폼으로 비상장주식에 남보다 먼저 투자하는 '선(先)학개미'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작년 11월 말 기준 '증권플러스 비상장'의 누적 거래대금은 약 6500억원, 피에스엑스는 약 270억원을 기록했다.
제도권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인 K-OTC 거래대금의 경우 작년 연간 1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컬리(마켓컬리), SSG닷컴, 현대오일뱅크, 오아시스 등 대형주들의 상장이 예정돼 비상장주식 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비상장주식 시장이 들썩이는 가운데 사설 플랫폼 제휴 증권사가 2곳에 불과한 상황에서 금융위의 이번 결정은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비상장주식 리서치를 강화하는 등 새 먹거리 발굴에 한창인 증권사들에게 금융위의 혁신금융사업자 확대는 고객 선점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장 이후에는 이들이 기존 증권사 플랫폼으로 자동 유입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빗나간 기대, 자체 플랫폼 가능성…"기존만 못할 것"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업계는 금융위가 기존 거래 플랫폼에 대한 인허가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관련 사업 준비에도 분주했다. KB증권은 비상장회사 전담 조직을 꾸렸고, NH투자증권의 경우 외부 운영업체와 제휴를 맺어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비상장주식 거래 사업자에 대한 신규 지정 없이 오히려 기존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금융위는 "(혁신금융사업자 지정으로) 그간 음성적으로 거래된 비상장주식 거래가 양성화되고, 결제 안정성이 강화되는 등 운영성과가 일부 인정됐다"면서도 "그러나 플랫폼내 거래종목에 대한 명확한 진입·퇴출 규정이 없는 등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일부 문제점이 있어 (신규 지정없이) 지정기간만 연장한다"고 설명했다.
피에스엑스와 두나무에 대해서도 "투자자가 더욱 안전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3개월 이내에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라"는 조건부 연장을 내걸었다.
더욱이 혁신금융사업자로 신규 지정되거나 연장되면 향후 2년간 다른 사업자가 같은 서비스를 출시할 수 없게 배타적 운영권이 주어진다. 앞으로 2년간은 다른 사설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과 증권사의 제휴 서비스가 시장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가 자체 플랫폼을 출시하는 것이다. 유안타증권의 '비상장레이더'나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의 '네고스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거래종목 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기존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에 이용자가 워낙 많이 쏠려있어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주식) 시장이 커지면서 성장성이 있다고 봤고 2년을 기다렸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며 "시장 활성화나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 아쉽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업자 확대만 기다리던 증권사들이 자체 플랫폼 출시로 방향을 틀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존 플랫폼에 이용자들이 몰려있는데 증권사 자체 플랫폼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