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뉴욕 증시에 쓴맛을 본 서학개미들이 신흥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간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주식 시장에서 테슬라와 애플을 비롯해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쇼트 QQQ 상장지수펀드(ETF)(TQQQ) 등 빅테크 관련 종목 중심으로 담아왔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확산으로 조정장이 장기화되면서 홍콩과 베트남 등으로 옮겨타기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베트남·홍콩 지수 추종 ETF 상위권 진입
29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일주일간 VFM VN 30 ETF를 2462만달러어치 순매수했다. VFM VN30 ETF는 베트남 호찌민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로블록스, 애플 등 인기종목들을 제치고 순매수 9위에 안착했다.
홍콩 항셍 차이나 엔터프라이즈 인덱스 ETF도 순매수 상위 10위에 랭크됐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인 금액은 2375만달러에 이른다. 이 상품은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중국 기업 40개로 이뤄졌으며 주요 기업으로는 텐센트, BYD, 알리바바 등이 있다.
이들 ETF가 순매수 상위권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은 지난 20일부터다. 뉴욕 증시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변동성이 커진 시점과 맞물린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지난 20일 약 20거래일만에 3만5000포인트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이후 반락해 27일에는 3만3301.93까지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4400대에서 4100대로 하락, 일주일새 300포인트가 증발했다.
가장 낙폭이 컸던 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다. 내달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기업 실적 우려가 겹치며 기술주를 억누르고 있다. 나스닥 지수는 20일 1만3453.07에서 27일 1만2488.93으로 964.14포인트 하락했다. 일주일새 7%가량 빠진 셈이다.
뉴욕 증시의 조정장이 길어지면서 서학개미들의 보유 종목 수익률도 반토막이 났다. 우선 국내투자자들이 약 14억달러어치를 사들인 TQQQ는 연초 대비 55.54% 빠졌다. TQQQ의 경우 나스닥100지수를 3배 추종하기 때문에 손실은 하락률의 3배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국내투자자들이 많이 담은 SOXL은 연초 대비 69% 추락했다. SOXL은 ICE 반도체 지수를 추종하는 ETF로 엔비디아, 브로드캠, AMD 등으로 구성된다.
이밖에 테슬라(-26.53%), 엔비디아(-38.86%), 알파벳(-21.17%), 애플(-13.98%), 마이크로소프트(-15.39%) 등 서학개미들의 사랑을 받은 빅테크 종목들도 일제히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신흥국 갈아타기 시도...수익률은 글쎄
증시 전문가들은 손실이 커진 국내투자자들이 수익률을 메우기 위해 신흥국으로 옮겨타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투자 부담을 덜기 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항셍지수는 지난 2018년 고점을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 5년 만의 최저점 수준에 이르렀다. PBR 1배도 깨지면서 가격 메리트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보다 먼저 지수가 빠지기 시작했던 신흥국 쪽에 가격 이점이 있다고 본 투자자들이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투자 성적은 우울하다. 만일 20일에 VFM VN 30 ETF를 매수했다면 수익률은 –5.08%다. 같은 기간 항셍 차이나 엔터프라이즈 인덱스 ETF의 수익률도 -2.87%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매수가 오히려 손실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기현 SK증권 연구원은 신흥국 시장과 관련해 "저가매수 기회로 보는 의견과 현재 매크로 상황에선 매력도가 낮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며 "홍콩의 경우 정책 관련 불확실성이나 대중 관계 등 지정학적 위기 요인이 아직 해소가 안된 상황에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