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투자증권이 이번에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로 실적 리스크를 짊어질 모양새다. 이 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인정한 금융감독원이 판매사의 전액배상을 권고하면서다. 아직 회사 이사회 판단이 남아 있지만 전례를 볼 때 신한투자증권이 금감원 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다.
앞서 라임 펀드로도 투자자 전액배상을 받아들인 신한투자증권은 당시 관련 충당금 반영으로 분기 적자를 낸 바 있다. 이는 신한금융지주가 '리딩금융' 경쟁에서 KB금융지주에게 밀리게 된 결정타가 되기도 했다. 이 증권사는 또한 젠투펀드, 팝펀딩펀드 등 다른 부실 사모펀드와도 얽혀있다. 향후 이들 펀드에 대한 금감원 판단에 따라 또 한번 충당금 리스크를 가져갈 가능성이다.
라임펀드로 놓친 리딩뱅크…충당금 리스크 '현재진행형'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이 올해 3분기말 현재 계상한 충당부채는 총 3937억원이다. 이중 96%로 대부분인 3784억원이 라임 및 헤리티지 펀드, 그리고 이외 더 판매한 다른 펀드 관련 금액이다. 일단 헤리티지 펀드 관련 충당금이 2272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는 이 증권사가 판 헤리티지 펀드 가운데 기초자산 회수가 불가능한 금액이 계상돼 올라간 것이다.
다만 이는 앞서 신한투자증권이 헤리티지 펀드 투자자들에게 가지급한 1888억원과는 별개다. 이 증권사는 2020년 4월부터 만기상환이 지연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금 회수 시점에 최종 정산을 하되, 투자원금의 절반을 가지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쉽게 말하면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원금 일부를 일단 주고, 이후 분쟁조정 결정 등에 따라 보상 비율이 확정되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라임펀드 관련 충당부채는 이미 3분기말까지 656억원이 투자자에게 지급됐음에도 추가로 520억원이 더 잡혔다. 앞서 미지급된 금액에 금감원의 원금 전액배상 결정에 따른 예상 추가 지급 금액이다. 나머지 902억원은 신한투자증권이 판매한 또다른 금융상품 10종(신탁 4종, 펀드 5종, 랩 1종)에 대한 건이다. 펀드 등 이들 상품에 대해 이 증권사는 지난해 8월 이사회에서 사후정산 방식의 사적 화해를 결정하고 진행해왔다.
충당부채는 지출 시기나 금액이 확실하진 않지만 과거 사건이나 거래의 결과로 유출될 소지가 매우 큰 부채다. 이는 재무제표상에서 비용으로 반영돼 이익을 깎아 먹는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충당금 적립에 따른 '적자의 악몽'을 경험했다. 작년 4분기 사모펀드 관련 충당금 설정을 필두로 1145억원의 영업외손실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467억원의 순손실을 본 것이다. 라임, 헤리티지 사모펀드 관련 충당금이 포함된 기타충당부채는 지난해말 기준 3803억원으로 1년 만에 2.5배 가까이 불어났다. 직전분기보다도 1464억원 늘어난 규모다.
금융지주내 비은행 핵심 계열사인 신한투자증권의 이같은 부진은 '리딩금융' 판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3903억원 차이로 KB금융지주에 순익 1위 자리를 내줬다. KB증권이 5942억원의 연간 순이익을 내면서 은행(2조5910억원)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반면, 신한투자증권은 사모펀드 여파에 순익이 3208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헤리티지' 추가 충당금 불가피…젠투·팝펀딩은 결론도 안 나
문제는 헤리티지 펀드에도 금감원이 판매사 전액배상 결론을 내리면서 이 펀드 최대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추가 충당금 설정에 따른 실적 리스크를 또 한번 맞닥뜨릴 수 있게 됐단 점이다. 국내에서 판매된 헤리티지 펀드 4885억원어치 가운데 신한투자증권(3907억원) 비중은 80%에 육박해 가장 크다.
금감원은 지난달 21일 연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환매중단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앞서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에 적용했던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인정했다. 펀드 상품제안서의 주요 내용이 부풀려지거나 거짓으로 작성돼 투자자의 착오를 부르기 충분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조정안은 현재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판매사들에게 통보된 상태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분조위의 계약취소 결정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신뢰 회복이라는 원칙에 따라 종합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이사회에서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례 등을 감안하면 이사회는 절차상 요식행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펀드에 대한 금감원의 전액배상 권고 때도 판매사들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이 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금감원 역시 판매사의 수용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윤덕진 금감원 분쟁조정3국장은 지난 22일 관련 백브리핑에서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례를 보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판매사들이 조정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한투자증권이 헤리티지 펀드 판매금액(3907억원)에 대해 투자원금 전액을 실제로 반환하게 되면, 단순 계산으로만 3분기말 기준 충당금(2272억원)에서 1600억원가량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이 역시 기타충당부채 계정에 잡히는 동시에 영업외비용에 반영돼 추후 실적에 직격타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 증권사는 1조원대의 환매중단 사태를 부른 젠투(Gen2)펀드 또한 4200억원 규모를 팔아 국내 금융회사 가운데 판매금액이 가장 많다.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투자원금의 40%를 가지급하기로 했지만, 금감원 분조위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앞으로 결과에 따라 이 역시 실적에 화약고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외 팝펀딩펀드, 알펜루트펀드와도 신한투자증권은 엮여있는 상태다.
이재우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신한투자증권은 라임 및 헤리티지 펀드, 이외 금융상품 관련 배상금 지급 등 비경상적인 손실이 잇달아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기업금융(IB) 등 경상적인 영업성과와 대비해 순이익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