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아 금융투자업계 주요 수장들이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고객 중심 사고와 경영의 중요성을 되새기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과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자고 역설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경기 침체 등 산적한 대내외 변수들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증권가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그에 따른 대비와 안정적 운영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고객에 모든 걸 맞춰라" 한 목소리
대다수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신년사에서 빼놓지 않고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고객'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금융투자업의 근간인 고객 신뢰를 중요시하면서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고객을 우선시하고 올바른 투자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특히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는 것을 기억하고 높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사업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2년 연속 신년사 대부분의 내용을 고객 중심 기조에 맞췄다. 정 사장은 "좋은 사람과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며 "고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는 것이 우리를 고객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 없는 존속과 성장은 불가능하며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잘 제공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에 새롭게 사령탑에 오른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고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손님이 찾아오는 증권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강 대표는 "손님 수 증가야말로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쉽고 편한 디지털 플랫폼, 특화된 상품,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형 영업 체계 구축으로 손님이 찾아오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하나증권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안정 수익 기반 마련·리스크 관리…혁신도 강조
금투업계 수장들은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인해 수익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표시했다. 따라서 올해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 마련과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찾아오는 어려움과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성장의 계기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올해는 시황에 따른 흔들림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는 한 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이 사업 다각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한편 해외 신수익원 창출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미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와 디지털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박정림·김성현 KB증권 사장도 올해 경영전략 방향으로 '안정적인 수익력 강화'를 제시하면서 '금융투자 플랫폼 중심의 사업 역량 확대'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정림·김성현 사장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영환경이 예상되는 만큼 가장 중요한 고객의 자산과 가치를 지키고 최적의 투자솔루션 제공을 통해 지속 성장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규 이베스트투자증권 대표 역시 "최근 몇 년간 위험 관리를 계속 강조했으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크다"며 "기존 투자 건들을 꼼꼼히 재점검해 변화된 시장에 맞는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예리한 통찰력과 신중한 실행력으로 신규 투자를 진행해달라"고 주문했다.
서병기 IBK투자증권 대표는 아예 올해 경영전략 목표로 '위기 극복을 위한 체질 개선'을 내걸었다. 서 대표는 "리스크를 피하는 것만이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통해 구조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이자 금융투자업의 본질"이라면서 "리스크가 우리 본업의 가장 중요한 식재료임을 알고 이를 이용해 좋은 식탁을 차리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라는 것을 명심해달라"고 전했다.
위기를 대비한 리스크 관리와 더불어 현 상황을 기회로 만드는 혁신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최현만 회장은 "미래에셋은 지난 23년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온 혁신 DNA와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다"며 "2023년에도 이런 DNA를 바탕으로 '전략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말한 전략적 혁신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의 근간이 되는 비즈니스를 재정립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금융을 수출해 국부를 창출한다는 전략하에 글로벌 비즈니스와 우량자산 투자를 확대하는 것처럼 고정관념과 틀에서 벗어나 유니크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관기관장들도 '일단 시장 안정부터'
증권 유관기관장들 역시 시장 안정에 무게를 두면서 투자 문턱을 낮추고 국민 노후 대비를 돕는 데 힘을 쏟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시장 참가자들이 불신하는 시장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킨다"며 "불법 공매도를 철저히 근절하고 테마 이슈를 악용한 위반을 기획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믿고 투자하는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금융시장 불안 확산에 대비한 예방적 위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손 이사장은 또 "깜깜이 배당 관행을 개선하고 글로벌 투자자 진입 규제를 완화하겠다"며 "파생시장도 야간거래 플랫폼을 갖추고 기본예탁금제도를 개선해 투자의 문턱을 낮추겠다"고 전했다.
올해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의 안착을 통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와 사적연금 통합소득대체율 개선 등 사적연금을 통한 국민 노후생활 준비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함께 대체거래소(ATS) 안착과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법안 통과를 위한 지원 등 기존 추진사업 계승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금융투자를 국민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을 1순위로 꼽던 이전 협회장들과 달리 대내외 환경 악화를 감안해 위기 극복과 기존 과제 완성이라는 안정적인 키워드를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