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증권업계가 '실탄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단기차입 한도 확대를 비롯해 계열사 매각, 회사채 발행, 희망퇴직 등 갖가지 수단을 총동원해 현금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올해도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의 우려가 높은 유동성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단기차입 한도 늘리고, 회사채 찍고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다올투자증권은 지난달 22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단기차입 한도를 기존 2조8000억원에서 3조원으로 2000억원 확대했다. 기업어음(CP) 발행한도와 금융기관 차입 한도를 각각 1000억원, 2000억원씩 늘리는 한편 단기사채와 증권금융 대출약정 등 기타 차입 한도는 1000억원 줄였다.
이밖에도 다수 증권사가 CP 발행 한도를 확대했다. 유안타증권이 8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2000억원 늘린 것을 필두로 지난달 현대차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이 각각 5000억원에서 8000억원, 1조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증액했다. 대형사 중에서는 키움증권도 1000억원 확대했다. 유진투자증권은 금융기관 차입 한도를 3000억원 늘렸다.
차입 한도 확대는 실제로 채무를 늘리는 개념은 아니다. 유사시에 대비해 자금을 차질 없이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선제 조치로 볼 수 있다. 한 중형 증권사 관계자는 "(차입 한도 확대는)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은 아울러 5%대 금리를 내세워 회사채 발행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작년 11월 5.8%대 금리로 3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다음 달에는 미래에셋증권이 5.4% 금리로 200억원을 조달했다. 메리츠증권은 채무상환을 위해 5.9%대 1600억원 공모채를 발행한 데 이어 5.5~5.6%대 금리로 1100억원어치를 추가 발행했다.
각 사들은 이 밖에 계열사 매각, 희망퇴직 등을 통한 외형 줄이기에도 힘쓰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앞서 알짜 계열사인 다올인베스트먼트와 태국법인 다올타일랜드를 매물로 내놨다. 다올투자증권은 두 계열사 매각으로 3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과 하이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등은 지난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새해에도 화두는 '재무건전성'
지난해 고금리 환경 속 증권사들의 순이익은 반 토막 났다. 하반기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증권사 기업금융(IB) 부문의 주요 축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영업도 대폭 위축됐다. 시장에서는 작년 6곳에 달했던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의 '1조 클럽' 가입 증권사가 이번에는 한곳도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도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진다는 관측 속에서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둘러싼 우려는 계속될 전망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단기자금 시장 불안이 꺼지지 않는 상황에서 증권사의 현금 확보와 자금 조달 능력은 경영 안정성을 위한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단기시장 자금 조달 여력의 기준이 되는 CP 금리는 지난해 12월9일 5.54%로 최고점을 찍은 뒤 오름세가 한 풀 꺾인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5%대에 머물고 있는 만큼 안정을 되찾았다고 보긴 어렵다.
신용평가업계는 증권사들의 재무건전성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에는 등급 하향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신용평가는 케이프투자증권과 SK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올해 증권업 전망 보고서에서 비우호적 영업환경으로 인해 증권사들의 실적 개선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높은 금리 수준과 이미 발행된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크레딧 경계감으로 인해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유동성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