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구조조정 뒤 배당잔치?…신평사의 모순된 행보

  • 2023.02.14(화) 10:31

한기평, 결산 배당 전년대비 50% 늘려
연말 희망퇴직 시행으로 실·팀장급 떠나
신평사 고배당 관행 당국 모니터링 필요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기업평가가 배당금을 전년대비 50% 늘렸다. 한기평 지분을 70% 넘게 쥐고 있는 외국계 신평사 피치는 170억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챙겨갈 예정이다. 

시장에서 의아해하는 점은 최근 이 신평사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사실이다. 신용평가사는 연구인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인력 투자는 소홀히 하면서 모회사에 안겨줄 배당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비즈워치

배당 50% 늘리자 대주주 '피치' 170억 가져가

14일 금융감독원 다트시스템에 따르면 한기평 이사회는 지난해 결산 현금배당금을 1주당 5100원(배당총액 227억5044만원)으로 의결했다. 직전해 배당금(1주당 3397원, 배당총액 151억5357만원) 대비 50%나 늘어난 수준이다. 결산배당금은 오는 3월 29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상장사들은 대개 연간 실적에 비례해 배당금을 책정한다. 한기평의 영업이익은 회사채 시장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뒷걸음쳤다. 작년 9월말 기준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별도기준)은 123억5500만원으로 직전년 같은기간(146억6500만원)과 비교해 15.7% 줄었다. 반면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으로 순이익은 대폭 늘어 300억2700만원을 기록했다.

한기평 측은 당기순이익 증가로 자연스레 배당이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한기평 관계자는 "배당은 법인 단위에서 지출이 나가기 때문에 별도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정한다"며 "자회사 이크레더블에서 배당이 많이 들어오면서 당기순이익이 확대돼 배당 증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덕분에 최대주주이자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피치는 한기평 지분 73.5%(333만9391주)를 보유하고 있어 배당금으로 170억3089만원을 가져간다.

배당은 매년 이사회를 통해 결정한다. 한기평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3명 등 총 7명으로 이뤄져있다. 이중 사내이사(기타비상무이사)인 리퀑청(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영지원 헤드), 부디카 프라사드 피야세나(아·태지역 기업평가그룹 헤드), 제임스맥코맥(국가신용평가 글로벌 헤드) 3명은 모회사 피치 임원이다. 

한기평의 최근 5년간 배당성향(별도 기준)을 살펴보면 70~80%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전년도 코스닥 상장사의 평균 배당성향인 26.9%와 비교해 약 3배에 달한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총액을 나눈 값이다. 4분기 당기순이익을 감안하더라도 2022년 배당성향은 70%대로 추정된다.

/그래픽=비즈워치

희망퇴직 실시... 전문 인력 확충엔 소홀' 비판

배당은 주주환원책의 일환으로 주주가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문제는 본업인 신용평가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력 충원이나 평가 업무 개선을 위해 집행하는 자금 여력이 줄어들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한기평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동시에 연차가 높은 실·팀장급을 일반 연구원으로 보직 발령을 내 사실상 사직을 권고했다. 이로 인해 실장급 3명, 실장급 전문위원 2명, 팀장급 2명을 포함해 다수가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신용평가사 1곳에 종사하는 애널리스트는 50~60명 수준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지만 평가해야할 회사채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무보증회사채 등급보유 업체는 1318곳으로 5년 전과 비교해 200여개 증가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평가는 애널리스트가 특정 산업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얻은 정보와 개별기업의 특성을 두루 살펴 등급을 매기는 작업"이라며 "애널리스트 한명당 평가 건수가 늘거나 업력이 적은 애널리스트들 위주로 꾸려진다면 평가 업무의 정교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업무 개선을 위한 투자가 부재한 환경은 결국 국내 회사채 시장의 등급 인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킬 우려로 이어진다. 신평사들이 매긴 등급 분포가 한쪽으로 쏠려면 투자자들이 적시에 신용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2021년 말 한국금융연구원이 발간한 '신용평가산업 규제 역사와 경쟁정책 개선방안'에 따르면 복수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3대 신평사의 평가 등급이 차별화된 비율은 8%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신평사들의 고배당 관행에 대해 감독당국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필규 연구위원은 "회사별로 배당을 결정하는 것은 고유 권한이고 신용평가 업무의 평판 유지에서 외국 신평사들의 역할을 고려할 때 배당 지급이 마땅하다"면서도 "다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에 대해 규제 당국이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