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가 국내 증시를 짓누르면서 코스피, 코스닥이 급락했다. 장중 증시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연이어 발동됐으나 급락세를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8.77%(234.64) 급락한 2441.55로 마감했다. 이는 2001년 이후 역대 4번째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지난 2008년 10월 16일에는 9.4%, 10월 24일에는 10.6% 하락한 바 있다. 코스닥 지수도 전일대비 11.3%(88.05) 하락한 691.28로 장을 마쳤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 이른바 'R(Recession) 공포'가 커진 상황에서 최근 글로벌 증시를 견인했던 인공지능(AI) 거품론까지 떠오자 글로벌 증시에 이어 국내 증시도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지난 2일 공개된 미국 7월 실업률 지표가 4.3%로 오르면서 ‘삼의 법칙’에 부합하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의 법칙'은 클라우디아 삼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경기 침체 분석 기법으로, 미국 실업률 최근 3개월 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 침체가 시작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최근 반도체 랠리를 이끈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 블랙웰의 출시가 지연될 것이란 소식에 주가가 급락하면서 관련 종목의 약세로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0.3%, 9.87% 급락했다.
이처럼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급락하자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먼저 코스피는 오전 11시부터 11시 5분까지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으며, 코스닥은 오후 1시 5분부터 10분까지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이후에는 모든 종목 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를 발동시키기에 이르렀다.
거래소는 코스닥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황이 1분간 지속하자 서킷브레이커를 오후 1시 56분부터 20분간 발동했다. 이어 코스피 지수도 전일 대비 8% 이상 하락해 1분간 지속하자 서킷브레이커를 오후 2시 14분부터 20분간 발동했다.
증권가에서는 시장이 패닉에 빠졌고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급격한 하락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엔화가 강세로 전환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미친 영향력도 큰 것으로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 공포 상황에서 환율 폭락,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흐름이 악순환의 고리처럼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시장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며 "극심한 저평가 구간까지 내려왔지만 심리와 수급에 따라 과도한 하락이 나오고 있어 어디가 바닥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자금 이동으로 시장이 패닉 양상으로 가는 부분이라 경기 침체, AI 논란 등 이것들을 악재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지났다고 보고 있다"며 "미국 단기자금 시장이나 엔화 등 자금 시장이 진정되기 전까지 시장의 저점을 예측하는 건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데이마켓에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가 하락 중인데 주요 기업들의 낙폭 확대가 국내 증시 낙폭을 확대한 요인 중 하나로 생각된다"며 "최근 한 달 동안 12% 넘게 상승한 엔화 강세가 시장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추후 대응은 여러 가지 지표를 확인하면서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경민 연구원은 "오늘 밤 나오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 지수와 이번 주 미국 실업수당 청구 건수, 다음 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확인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