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금융당국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우수기업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을 유예해주는 인센티브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당국은 이번에 마련한 기준을 토대로 내년부터 적용 대상을 선정한다.
아직 세부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경영계에선 기대감이 낮다. 유예 조건 중 하나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유예 혜택을 받기 위한 문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회계업계에서도 유예 자체가 회계투명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기적 지정제 3년 유예 선정 기준 내달 윤곽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다음 달 금융위원회는 지배구조 우수 기업에 대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 유예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내년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실제 평가를 진행하고, 2026년부터 지정 유예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정부가 2018년 11월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신외감법(개정 외부감사법)의 핵심 축이다. 이 제도 시행으로 기업들은 6년 감사인을 선임하고, 이후 3년 동안은 금융당국으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고 있다.
올해 정부는 밸류업 정책 참여를 유도하기위해 주기적 지정제 적용을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다가 금융위는 지난달 회계의 날 행사에서 밸류업 우수기업에 주기적 지정제를 3년간 유예해주는 안을 추진하기로 못 박았다.
유예 기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금융위가 유예기간을 3년으로 제한한 이유는 인센티브 시행 첫해인 2026년 유예대상으로 선정되면 2028년까지 감사인 지정을 받지 않는데, 이 시점이 주기적 지정제가 '6+3년' 주기를 처음 마치는 때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당국은 한번의 주기를 완료하는 시점에 주기적 지정제를 원점 재검토하기로 했는데, 그 이상 유예를 허용한다면 업계와 시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위는 금융감독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회계기준원, 상장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관계기관과 함께 TF를 꾸려 유예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세부기준을 마련 중이다. 앞서 당국은 유예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적·전문적 구성 △감사위원회의 효과적 운영 △내부회계관리의 효율성 등을 평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TF는 이 가운데 감사위원회의 독립적·전문적 구성을 측정하는 중요 기준 중 하나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2~3차례 회의를 거쳐 조건을 확정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들만 감사위원회 설치가 의무인데 이 점을 어떻게 고려할지, 감사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회계분식을 막기위해 가장 효과적일지 등 다양한 것들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재계도, 회계업계도 시큰둥
아직 세부 평가방식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감사를 받아야하는 경영계와 감사를 실시하는 회계업계 모두에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인센티브 적용 대상인 경영계의 경우는 혜택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기업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러운 조건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유예 인센티브를 받는 회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다.
상장사 관계자는 "감사위원회가 아닌 상근감사를 둔 상장사도 유예 대상으로 두는 것을 건의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최소 자산총액 5000억원이 넘는 20곳 안팎의 일부 기업만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계업계에서는 '영구 면제'가 아닌 '유예'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주기적 지정제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중견 회계법인 대표는 "주기적 지정제 자체를 비용적인 측면에서만 보는 것 같다"며 "밸류업 공시를 잘하면 회계투명성은 조금 불투명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예로 확정이 난 건 다행이지만 궁극적으로 회계투명성을 담보로 혜택을 주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견회계법인 대표는 "외부감사 면제든 유예든 시장이 반길만한 혜택인지 의문"이라며 "주기적 지정제를 실시한 후 재무제표 투명성이 그만큼 올라간 효과를 보였는데, 투자자들은 오히려 회계 투명성을 원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