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이 지난해말 기준 처음 허용범위 밖으로 이탈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주식 가치가 작년 하반기 하락한 반면, 해외주식 가치는 급등하면서 보유비중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허용범위를 맞추기 위해 국내주식 매수에 나설 것으로 본다.
'큰손' 국민연금의 자금이 유입되면 부진한 국내증시 수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장기적인 증시 반등 재료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장 패닉에 국내주식 비중 12%대로
국민연금의 2024년 10월 수익률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주식 평가액은 144조4940억원으로 집계된다. 이는 전체 기금자산의 12.3%를 차지하며, 국민연금의 목표 포트폴리오(15.4%)를 3.1%포인트 밑도는 수치다.
국내주식 비중은 지난 2020년 21.2%였으나 이후로 쭉 하락하며 14%대를 기록 중이었다. 작년말에는 2023년말 대비 2%포인트 더 빠지며 12%대 초반까지 내려앉았다. 국내증시 부진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코스피지수는 2024년 1월 2600대에서 출발해 7월 2800대까지 치솟았지만, 하반기 내내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그 결과 지수는 작년 마지막 거래일 연초 대비 9% 빠진 2399.49로 마감했다.
대형주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 기금은 지수내 비중을 추종하는 '패시브펀드'로 운용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포트폴리오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10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비중은 국내주식 가운데 23.29%로 가장 크다. 연초 7만원대에서 출발한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 부진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소외 우려 속 5만원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 종목의 시가총액은 무려 158조원이 증발했다.
반면에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미국 증시가 역대급 랠리를 보이자 해외주식의 가치는 가파르게 올랐다. 이에 따라 해외주식 비중도 35.6%로 목표치인 33%보다 2.6%포인트 웃돌았다. SAA 허용범위 밑으로…리밸런싱 사유 발생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비중은 2023년 말에도 목표치 아래였지만, 당시에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은 낮았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전략적 자산배분(SAA)와 전술적 자산배분(TAA)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주식, 국내채권, 해외주식, 해외채권, 대체투자 총 5개 자산군을 중기적으로 자산 배분하고, 이를 연간단위로 나눠 목표비중을 정한다. 이에 따라 정해진 수치가 2024년말 타깃은 15.4%였다. 여기서 시가 변동에 따라 SAA비중을 정하는데, 목표비중에서 ±3%포인트까지 움직이도록 허용한다.
목표 비중을 과하게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범위를 설정한 것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국민연금은 리밸런싱(자산 비중 조정)에 나선다. 즉,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국내주식 비중을 12.4~18.4%으로 유지해야 한다.
2023년 12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 비중은 14.3%로 SAA 허용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나 2024년 들어 13%대로 내려갔고 9월에는 12%대로 진입했다. 그리고 10월엔 국내주식 비중이 12.3%까지 하락하며 SAA 허용범위를 벗어난 상태다.
리밸런싱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에 기금운용본부는 시장영향을 고려해 주식 매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관계자는 "시가로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최근 비중이 목표밴드를 벗어나는 문제가 생겼다"며 "연말 중기 자산 배분이기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이후에는 시장에 영향을 최대한 주지 않도록 리밸런싱을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매수세 증시 반등 이끌까…'일시 효과 뿐' 지적도
국민연금은 과거에도 허용범위를 이탈하자 비중 조절에 나선 적이 있다. 2020년 기금운용본부가 설정한 국내주식 비중은 그해 말 17.3%를 목표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발 증시 랠리로 실제 비중이 20%대로 치솟자, 비중을 맞추기 위해 '팔자'로 대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포함해 연기금이 작년 하반기에만 4조7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자본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올해도 '사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있다. '큰손'이 매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은 증시 반등을 기대하게 하는 재료 중 하나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가이드라인보다 낮아졌기 때문에 매수 사유가 발생한다"며 "다만, 한번에 자금이 들어오진 않고 기준을 맞추기 위해 6~7개월간 비중을 다시 채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일시적인 수급 개선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증시 랠리를 이끌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펀드매니저는 "연금이 산다는 것 자체는 일시적인 효과를 낼 뿐"이라며 "더욱이 금융주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보유한도가 정해져 있는 등 제약이 있고, 결국 정해진 비중을 다시 맞추면 차익실현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국내기업들의 펀더멘탈이 개선되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얼마나 들어오는지가 증시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