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오는 23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에 유리한 이사선임 방식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5%의 의결권을 쥔 국민연금이 최 회장에게 힘을 보태면서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안 통과가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연금은 이사선임 안건에 대해선 현 경영진과 영풍·MBK파트너스 측 후보에 골고루 의결권을 나눠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17일 회의를 열어 고려아연 주총 안건에 관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 결정했다. 이날 회의는 2시에 시작해 5시무렵까지 약 3시간 동안 진행했다.
수책위는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표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은 특별결의(출석 주주의 3분의 2이상 찬성) 안건인 동시에 주주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적용한다. 3%룰 적용시, 3% 초과분을 '분모'에 해당하는 의결주식총수에서 제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의결권 비중은 약 5.02%로 추정된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원하는 후보에게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투표방식이다. 최대주주에 우호적인 이사들로만 이사회를 꾸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 장치로 꼽힌다.
국민연금 수책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에 대해선 지침상 찬성을 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경영권방어 악용 우려 등 다른 목소리도 있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집중투표제 도입에 힘을 실으며 최윤범 회장은 영풍·MBK가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는 것을 막으면서 일단 이번 주총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풍·MBK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어 분쟁이 장기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비즈워치가 고려아연 주주구성을 분석한 결과, 집중투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투표 방식(3%룰) 적용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34.1%, 영풍‧MBK는 23.2%씩 의결권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최윤범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해온 법인주주(한화계열, 현대차, LG화학 등)도 23.7%를 행사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한 의결권 비중은 최 회장 측 57.8%, 영풍·MBK 23.2% 수준으로 파악되는데 국민연금(5.02%) 의결권이 최 회장 측으로 합쳐지면서 집중투표제 찬성비율은 62%대로 올라섰다. 집중투표 가결 요건(67%)을 위해서는 5% 의결권만 남은 상황이어서 한층 유리한 국면이다. 다만 영풍·MBK가 제기한 가처분 결과라는 변수는 남아있다.
국민연금 수책위는 이사수 상한 설정에도 찬성하기로 했다. 이 역시 경영진이 제안한 안건으로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제한하자는 내용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찬성에도 이 안건은 이미 영풍·MBK가 이미 특별결의 부결 정족수(33%)를 넘어서기 때문에 부결이 확실하다.
국민연금 수책위는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선 경영진과 영풍·MBK 측 각각에 표를 분산하기로 결정했다. 수책위는 △최재식 카이스트 교수 △제임스 앤드류 머피 올리버와이먼 선임 고문 △정다미 명지대 경영대학장 등 경영진 추천 후보 3명 △변현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등 영풍·MBK 측 후보 3명에게 분산투표 하기로 했다. 수책위는 "(이들 후보가)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분쟁의 '키맨'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은 찬성 대상에서 제외했다. 나머지 후보에 대해서도 적정 이사 수 초과 등을 고려해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수책위는 또 △액면분할 △소수주주에 대한 보호 관련 정관 명문화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 경영진 제안에도 찬성했다. 영풍·MBK 연합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집행임원제도 도입에도 찬성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