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밸류업(기업가치제고)' 프로그램 1년을 맞아 제도가 시장에 잘 안착했는지를 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은 밸류업 정책의 성과가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장은 여전히 밸류업 정책의 미흡함을 꼬집고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한 주주권익침해 우려, 자기주식을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등 시장 요구에 반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밸류업 정책 1년을 맞아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 중 10곳을 선정해 우수기업 표창도 실시했다. 밸류업 인센티브의 일환이다. 다만 표창을 받은 기업은 모두 코스피 상장사였다. 밸류업 공시를 올린 코스닥 상장사 중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현 밸류업 정책에서 코스닥 등 중소형 상장사는 소외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밸류업 참여기업 주가수익률 높다" 자평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주최로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밸류업 1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난 1년간 금융당국이 추진해 온 밸류업 정책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밸류업 공시를 올린 상장사 중 우수기업에 대한 표창이 이어졌다.
이날 축사를 맡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밸류업 공시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참여한 기업들의 주가수익률은 미공시 기업대비 높은 수준이고 주주환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평가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우리 자본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및 투자자 신뢰를 높이기 위해 시작했는데 지난 1년 간 거래소는 밸류업 프로그램 안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27일부터 시작한 밸류업 공시는 지난 22일 기준 총 152개사가 참여했다. 코스피 상장사가 115개사, 코스닥 상장사가 32개사다. 거래소는 "10대 그룹의 참여율이 높았고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48.9% 달하는 기업들이 밸류업 공시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상장사 10곳 우수기업 선정…코스닥은 0곳
코스닥 상장사보다는 코스피 상장사들의 참여율이 높았던 만큼 밸류업 우수기업 표창도 코스피 상장사 위주로 진행됐다.
이날 우수기업으로 표창을 받은 기업은 총 10개사였다. HD현대일렉트릭과 KB금융지주가 경제부총리 표창을 받았고 메리츠금융지주, 삼양식품, KT&G가 금융위원장 표창을 수상했다. 아울러 삼성화재, 신한금융그룹, 현대글로비스, KT, SK하이닉스 5곳이 거래소 이사장 표창을 받았다.
코스피 상장사보다 밸류업 참여도는 떨어졌어도 코스닥 상장사 32개사도 밸류업 공시에 참여했다. 에프앤가이드가 첫 밸류업 공시를 올리면서 코스닥 상장사들의 밸류업 공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우수기업 표창을 받은 코스닥 상장사는 한 곳도 없었다.
밸류업 우수기업 표창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증권·운용·외국계 등) 및 기업 밸류업 자문단이 평가에 참여했다. 1차 정량평가를 통해 100개사를 선정한 뒤 2차 정성평가를 통해 20개사를 추렸다. 이 과정에서 코스닥 상장사 △HK이노엔 △노을 △넥스트칩 3곳이 명단에 올랐지만 최종 우수기업 선정에선 탈락했다.
이날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1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발표를 한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밸류업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지적이고 대기업, 금융업 위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장기간 주주수익률이 낮은 중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원인을 점검하고 개선계획 공시를 유도하기 위한 시장압력 및 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비금융 상장사 저PBR은 여전해…다른 접근 방법 필요
밸류업 정책 시행에도 전반적으로 주요국 대비 한국 비금융 상장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상장 비금융 기업의 PBR이 해외 주요국 기업 대비 만성적으로 낮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저PBR 이해를 위해서는 보유 자산의 공정가치, 미래현금흐름의 창출 역량, 주주환원 정책의 적정성 등을 고려한 입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규모 기업들의 밸류업 여력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기초여건을 갖춘 대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주주환원 확대를 통해 저조한 주가수익률을 보전할 수 있다"며 "기초체력이 탄탄한 대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개별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주주환원 정책 수립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를 다시 구축하는 작업"이라며 "지속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 한국 자본시장이 국내 제도 개선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투자 생태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