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폐지하기로 확정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더욱 치열한 경쟁환경이 조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최대 수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KT는 M&A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계열사 KT스카이라이프가 M&A 경쟁에 참여중이지만, KT그룹 차원에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진행했던 M&A의 시너지 효과와 함께 정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모습도 확인해야 한다는 등 복잡한 속내를 보인다.
정부는 지난 22일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를 열고 국내 디지털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을 심의·의결하면서 합산규제로 불리는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합산규제는 IPTV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을 전체의 3분의 1로 제한하는 한시적 제도다. 2015년 6월 시행 이후 3년이 지난 2018년 6월 일몰됐으나, 연장여부와 사후규제 관련 여야 공방이 이어지면서 있지도 없지도 않은 형태로 논란만 지속됐다.
이런 까닭에 지난 2년 사이 LG유플러스-CJ헬로, SK텔레콤-티브로드 M&A가 진행될 때 KT의 딜라이브 인수는 시도에 그친 바 있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산한 가입자 수는 작년 기준 1059만명으로 시장 점유율이 31.5%에 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규제완화 로드맵을 자세히 보면, 연내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에 시행령 등 하부규정을 정비하는 일정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뚫지 못하면 KT는 함흥차사의 길을 또 밟게 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규제 완화는 다행한 일이지만, 정부 방향은 기존에도 규제완화 였다"며 "개정안이 국회를 어떻게 통과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을 역임하고 새로운 수장으로 오른 구현모 KT 대표는 유료방송시장 이해도가 높은 만큼 M&A에도 시동을 걸 것이란 관측이 있었으나, 신중한 태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은 SK텔레콤과 티브로드,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시너지 효과를 조금 더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KT 입장에서 M&A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와 함께 비용 대비 효과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작년 말 기준 3위 사업자(LG유플러스)가 4위(CJ헬로)를 흡수해서 덩치를 빠르게 키우는 것과 1위 사업자(KT)가 상대적으로 작은 매물(딜라이브, CMB, 현대HCN 등)을 M&A하는 것은 크게 다른 유형이라는 얘기다.
CJ헬로는 가입자수 400만에 점유율 11.9%였고 티브로드는 303만에 9.0%였으나, 현재 매물로 나온 딜라이브는 가입자 200만(6.0%), CMB는 154만(4.6%), 현대HCN은 133만(4.0%)이다.
그런데 KT의 계열사이자 위성방송 사업자인 KT스카이라이프는 적극적인 M&A에 나선 상황이어서 더욱 묘한 양상이다.
이에 대해 KT그룹이 스카이라이프를 일종의 선봉장으로 M&A 시장에 보낸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KT와 스카이라이프 모두 이와 관련 '독립적인 행보'라고 주장한다.
최근 현대HCN 인수 추진을 공식화한 KT스카이라이프는 인수자금 마련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보유 현금 약 3200억원을 기반으로 차입, 회사채 등의 방식으로 추가 자금을 자체적으로 동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수 대상은 현대HCN만 아니다. 여러 대상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KT스카이라이프가 거듭 주장하는 M&A 추진 배경은 KT와의 시너지 효과라기보다는 '자체 생존'이다.
주춤하고 있는 위성방송 사업자로서 생존은 M&A를 통해 모색해 난시청 해소와 통일 대비 방송 서비스 구축 등 공적 책무를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위성방송과 케이블TV의 결합을 통한 실속형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기존 통신-방송이 결합하는 M&A와 다른 양상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있다.
물론 KT스카이라이프가 KT 자회사인 만큼 이 주장에 대해 업계에선 신뢰도를 높게 보고있지 않다.
업계는 이같은 KT그룹의 속내와 별개로 규제 완화에 따른 M&A 활성화를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유령 같은 규제 영향이 사라지면 유료방송 M&A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