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이 했던, 또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본의 과거를 밟고 있는 우리 경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본정부의 고령화 대응법과 철저히 원가에 집중하는 일본 기업의 코스트 의식에 주목했다.
11일 비즈니스워치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주최한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에 참석한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국립정책연구대학원 교수는 "고령화는 일본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복지재정의 통합이 없다면 일본 정부는 파산할 수 밖에 없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중인 한국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호리 교수는 "일본 정부는 2008년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개혁을 했다. 75세 이상이면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고령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또 "연금제도는 2004년 연금개혁 이후 근로자의 기여율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면서 "2017년부터는 확정기여형으로 바뀐다. 젊은 세대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회보장의 수요를 제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세대간의 형평성 문제는 필연적"이라며 "세대별 인구수에 따라 수익률이 영향을 받는 만큼 재정이 안정화된다 하더라도 추후 젊은 세대에는 마이너스효과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호리 교수는 한국 정부에 사적 연금 방식의 의료보험과 연금제로 운영을 제안했다. 그는 "결국 개인 계좌를 기반으로 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일본은 고령화가 너무 많이 진행됐다. 정책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좀 늦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오유키 요시노(Naoyuki Yoshino)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소장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꼽았다. 요시노 소장은 "일본은 통화정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리가 낮아도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는다.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민간투자를 가속화시키지 않는 통화정책은 해결책이 못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자금을 투입해서 고속도로를 건설해도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생산성이 높지 않다. 민간활동이 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의 '홈타운 투자수탁기금'을 본보기로 제시했다. 그는 "홈타운 투자수탁기금은 미국의 클라우드펀드와는 좀 다르다. 지역의 개인이 투자하는 것으로 지역의 민간투자를 이끌어 낼 금융이 있어야 벤처가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일본기업의 특징도 한국기업의 본보기로 제시됐다. 정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일본지역본부장은 "일본의 위기를 극복한 기업들을 보면 철저하게 코스트 의식을 갖고 있다. 기술이 훌륭하건, 세계적인 물량의 생산시스템을 갖고 있건, 인수합병(M&A)에 뛰어난 기업이건 철저하게 코스트 의식을 갖고 있다"며 "위기 극복의 가장 큰 핵심이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 본부장이 위기 극복의 사례로 꼽은 일본 기업은 일본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와 전자기기업체 일본전산(Nidec), 자동화 장비생산기업 키엔스(Keyence), 광학성 필름 제조기업 니토덴코(Nitto Denko), 제조·유통일괄화 의류(SPA) 브랜드 유니클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은 수석연구위원은 제조업의 혁신과 신제품 개발력 강화, 그리고 지나치게 중국시장에 의존한 신흥국 시장전략의 다각화, 일본 및 중국기업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주력 제조업의 차별화된 글로벌 신제품 생산과 창조력 강화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