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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효성·대림산업 지배구조 개선 추진하나

  • 2020.01.21(화) 10:00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한진칼같은 주주제안은 경영참여 해당 안 해
효성·대림산업, 국민연금 주주권 가이드라인과 시행령 개정안에 모두 부합
자산운용사로 확대한 ‘배당=경영참여 아님'.. 배당관련 주주활동 급증 예상

#사례1 국민연금은 작년 2월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꿨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한진칼에 정관변경 주주제안을 하기로 의결했고, 이러한 행위는 '경영참여 목적'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국민연금은 지분변동이 있던 날부터 5일내 공시해야하는 '5%룰' 적용을 받았다. 거대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지분변동 내역은 추종매매를 유발할 수 있고, 수익률 하락 우려로 이어진다.

#사례2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제안한 정관변경 내용은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즉시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내용과 '이사직을 상실한 사람은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로부터 3년간 회사의 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러한 주주제안을 지분 7.16%를 보유 중이던 한진칼에만 했고, 지분 11.7%를 가지고 있던 대한항공에는 하지 않았다. 지분율 10% 이상을 보유중인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을 행사하면 단기매매차익 반환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기매매차익 반환은 국민연금의 수익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달부터 국민연금은 위의 두 가지 사례에 적용받았던 '5%룰', '단기매매차익 반환의무' 대상에서 벗어난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한진칼에 시도했던 정관변경 주주제안과 유사한 내용을 다른 투자기업에 시도하더라도 '경영참여'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영참여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단기차익 반환의무도 당연히 없다. 따라서 대한항공처럼 지분율 10%가 넘는 투자회사에도 단기차익반환을 걱정하지 않고 똑같은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정부가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상법(법무부 소관)·자본시장법(금융위원회 소관)·국민연금법(보건복지부 소관) 시행령 개정안 가운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담겨 있는 핵심 포인트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맞춰 공적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날 의결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2월 1일부터 시행돼 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부터 당장 적용 가능하다.

#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했던 주주제안…'이젠 경영참여 아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의 핵심은 경영권에 영향을 주고자하는 행위가 아님에도 지금까지 '경영참여'로 분류했던 일부 주주권에 대한 해석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부는 ①공적연기금이 사전 공개한 원칙에 따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을 추진하거나 ②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상법이 보장하는 권리(해임청구권, 위법행위 유지청구권, 신주발행 유지청구권 등)를 행사하거나 ③주주의 기본 권리인 배당을 요구하는 행위는 '경영참여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기금에 해당하는 내용은 ①번과 ②번이다. ③번은 이미 공적연기금은 적용받고 있다.

특히 ①번과 같은 주주제안의 대표 사례가 국민연금이 작년 한진칼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정관변경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국민연금은 이미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사전 공개한 원칙), 한진칼 사례는 특정 이사의 선·해임이 아닌 일반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제안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도 보편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관여 행위는 '경영참여'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 적극적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국민연금은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사안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투자기업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 '법령상 위반'이란 횡령·배임·부당지원·경영진 사익편취 등을 의미하고, '우려'의 판단 기준은 검찰 기소(재판에 넘겨짐) 또는 법원의 1심 판결이다. 이러한 법령상 우려가 개선되지 않거나 회사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등 개선 여지도 없다고 판단하면 후속절차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작년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법령상위반 우려' 발생한 효성과 대림산업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대기업 중 '법령상위반 우려' 요건에 부합하는 대표 사례가 ㈜효성과 대림산업이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개인자금으로 구매한 미술품 38점을 효성 '아트펀드'에서 사들이도록 하고(업무상 배임), 허위직원을 두고 약 16억원의 급여를 지급한 혐의(횡령)로 작년 9월 1심에서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회장은 총수익스와프(TRS)거래를 활용해 계열사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를 부당지원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작년 12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가족회사가 보유한 호텔브랜드 '글래드'(GLAD)' 상표권을 대림산업의 자회사 글래드호텔앤리조트(옛 오라관광)가 브랜드사용료를 내고 쓰도록 한 혐의(부당이익 제공행위)로 공정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고, 검찰은 작년 12월 이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효성과 대림산업의 최고경영진 모두 '법령상 위반(횡령·부당지원)'과 '우려(검찰기소 또는 1심판결)'라는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 판단 기준을 충족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준 회장의 효성 등기임원 임기와 이해욱 회장의 대림산업 등기이사 임기도 나란히 올해 3월 만료된다. 두 회장 모두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 대상이다.

국민연금은 ㈜효성과 대림산업 지분을 각각 10%, 12.21%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라 조현준·이해욱 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선 주주가치훼손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질 것이 확실시 된다.

관건은 반대의결권 행사에 그치지 않고 ㈜효성과 대림산업의 정기주총에 앞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을 제안할 가능성이다. 이경우 두 회사의 정기주총에 앞서 다른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관심을 높이는 전환점이 된다.

개정 전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적용하면 ㈜효성과 대림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정관변경 주주제안은 '경영참여' 행위가 되고, 두 회사에 대한 지분율도 1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경영참여 행위를 하면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에 바뀐 시행령을 적용하면 '사전 공개한 원칙에 따른 지배구조 개선용 주주제안'은 경영참여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단기매매차익 반환 우려 없이 한진칼에 시도했던 수준의 주주제안을 ㈜효성과 대림산업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을 뒷받침하는 시행령 개정에도 불구하고 올해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이전보다 활발한 주주권 행사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한다.

이날 정부가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함께 의결한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회 등을 재편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을 논의·결정하는 핵심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상근3명과 민간전문가 6명 등 대대적 개편을 앞두고 있어 올해 정기주총 활동 기간까지 '의사결정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배당요구=경영참여 아님'…모든 기관투자자에 적용

한편 이날 정부가 의결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가운데 배당 요구 행위를 경영참여 범위에서 제외한 점도 의미가 있다.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기금에만 적용했던 특례였지만 다음 달부터는 모든 기관투자자에게 확대 적용한다.

다시말해서 '주주의 기본적 권리인 배당요구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해석을 더 이상 '특별한 규정'이 아닌 모든 기관투자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일반적 규정'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는 물론 지금까지 투자기업에 별다른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일반 자산운용사들도 이전보다 한층 활발한 배당 요구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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