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효과'.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오는 것처럼 어떤 문제를 억제하면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주택시장에서는 분양가 규제에 대한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해 분양가를 누르자 다양한 부작용이 부풀어 오를 징조를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새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 대비 저렴하게 책정되면 이른바 '로또 아파트'로 작용해 청약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에선 분양가를 규제해도 9억원이 넘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이 필요없는 부자들의 ‘줍줍’(무순위 청약을 통해 미분양 아파트를 쓸어 담는 행위)이 전망됐다. 결국 시세 차익을 노린 청약자들이 당첨되면 웃돈을 받고 되파는 '청약 장사'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 밖에도 분양가 산정에 부담을 느낀 조합‧시공사들이 후분양으로 전환하거나 분양 물량을 축소하게 되면 오히려 주택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혹시 로또?'..청약시장 과열되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6일 분양가 한도를 최대 주변시세의 110%에서 100%로 낮추는 내용의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는 24일부터 새로운 기준을 적용받는 새 아파트들의 분양가는 더 보수적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일부 실수요자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내용이다. 지난 4월 서초구 방배동에 공급한 ‘방배그랑자이’의 분양가가 3.3㎡(1평)당 4657만원으로, 고급주택을 제외하고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가격이 하향 조정될 여지가 생겨서다.
하지만 문제는 ‘로또 청약’이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면 상황에 따라서는 입주 시점에 수억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를 노리는 수요자‧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청약시장이 과열되고 기존 매매시장은 위축되는 '시장 불균형'이 우려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도 청약은 당첨만 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있는데, 앞으로 강화된 분양가 규제가 적용된 새 아파트들이 나오면 당연히 수요가 청약시장으로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재고주택과 같은 가격이라면 기왕이면 새 아파트를 원하기 때문에 청약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택 구매 대기 수요자들이 새 아파트 청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전망이지만, 분양가 부담으로 주택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나온다.
지난해 청약제도가 개편되면서 HUG의 분양심사를 받지 못해 10만 가구 정도 청약이 올해로 미뤄진 바 있다. 올해도 분양가 산정기준 변화 등으로 건설사나 조합원이 고심하다가 분양 일정을 미룰 수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올해 분양 예정 주택수는 47만 가구로, 2015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계획이 잡혀 있었다.
이미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들은 분양가 산정에 부담을 느끼거나 HUG와의 분양가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분양을 미루거나 후분양을 검토 중이다.
서울 강남구 상아2차 재건축 '래미안 라클래시'와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래미안 원베일리' 등은 분양가 규제를 피해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과천제이드자이', '위례 호반써밋 송파' 등의 분양 일정도 지연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사업주 입장에선 분양가가 낮아지면 사업성 등을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공급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며 "지금도 조합, 시공사, HUG, 지자체 등의 분양가 조율이 안돼서 분양이 늦어지는 게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어 "분양가가 계속 낮아지면 정비사업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추진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주택가격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최근 급매물이 소화되면서 강남 등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 올랐다고 하는데, 거래량이 워낙 적고 시장이 왜곡돼 있어 크게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다"며 "거래가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 분양가 규제를 강화하면 건설사들이 옵션비를 올려서 우회적으로 분양가를 올릴 수도 있고, 이마저도 안되면 궁극적으론 공급물량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서울의 경우 정비 사업이 주택공급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물량이 줄어들면 신축 주택의 가격이 올라가는 풍선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 부자는 '줍줍'하고 실수요자는 '…'
청약시장 내에서도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분양가 규제에도 가격이 비싼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에선 실수요자 보다는 돈이 많은 '줍줍족'에게 당첨기회가 많이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으면 사실상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데, 강남이나 한강변 등 인기 지역 아파트에선 분양가 규제를 한다고 해도 9억원 이하 분양가가 나오기 어렵다. 결국 대출 없이도 중도금을 낼 수 있는 현금 부자들이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래미안 리더스원'은 평당 평균 4489만원을 기록한데다 집단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최소 1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만 분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세보다 4억원가량 분양가가 저렴하게 책정돼 평균 청약경쟁률 41.69대 1을 기록했다. 전용면적 59㎡A 타입의 경우 422.25대 1로 최고경쟁률을 나타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로또 청약' 꼬리표가 붙었던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1246가구 모집에 3만1423건의 통장이 몰렸고, '디에이치 라클라스'도 210가구 모집에 5028명의 청약자가 지원하며 높은 인기를 방증했다.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무순위 청약'까지 도입돼 잔여물량을 노리는 '줍줍족'들의 청약 당첨문이 더 넓어졌다. 무순위 청약은 미분양, 미계약 물량을 투명하게 추첨받게 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당첨 가점은 낮지만 현금 여력이 있는 투자자들이 무순위 청약에 뛰어들면서 오히려 실수요자들의 청약문은 더 좁아지는 모양새다.
직방이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에서 사전 접수를 진행한 7개 단지는 모두 본 청약경쟁률보다 무순위 청약경쟁률이 높게 나타났다. 올해 첫 강남구 신축 분양 미계약분 추첨이었던 '디에이치 포레센트'엔 20가구에 총 2001명이 몰려 경쟁률 100대 1을 기록했다. 이곳은 전용면적 59㎡가 최고 13억원, 전용 84㎡가 16억원으로 평당 분양가가 4000만~ 4500만원에 달하고, 분양가 9억원을 넘겨 중도금 대출도 나오지 않는 곳이다.
오는 6월 분양 예정인 서초 그랑자이, 동부센트레빌, 래미안 라클래시 등 서울 강남 신축 아파트들의 분양가도 모두 9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김인만 소장은 "분양가는 결국 개발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문제"라며 "분양가가 높으면 건설사들이, 낮으면 소수 계약자들이 가져가는 건데 이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결국 대출이 필요없는 돈 있는 사람만 주택으로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양가를 규제하면 건설사들은 서울이나 인기 지역에만 공급하게 된다"며 "결국 현금이 부족하고 대출도 막힌 서민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