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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정비사업]⑤해외엔 있는데 한국엔 없는 것

  • 2020.03.13(금) 16:12

해외선 과거와 현재 공존해 개발, '공중권' 활용도
국내서는 일관성 없어…"공간의 연속성 유지해야"

서울 종로구 피맛골은 조선시대 말을 타고 대로를 지나는 고위직 관리를 피해 다니던 서민들의 길이란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이런 연유로 서민을 대상으로 한 먹거리 장사가 성행하면서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먹거리촌으로 남았다. 지친 직장인들이 퇴근 이후 동료들과 부담없이 막걸리나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2008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재개발했고 그 자리엔 고층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피맛골은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돼버렸다.

서울시가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이해관계자들간 갈등이 심화하고 각종 정비사업은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이 지연되는가 하면, 집값 상승을 우려해 혁신(특화)설계를 규제하면서 다시 '성냥갑 아파트'가 재현될 위기에 처했다.

자연스레 주택 공급이 위축될 상황이 오자 시는 저이용 공공부지에 집을 짓는 등 주택공급 방안을 내놨지만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시민들의 눈에 차지 않는 모습이다.

서울이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글로벌 도시 경쟁력을 갖춰 나가려면 보존과 개발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글로벌도시, 엄격한 역사·문화 보존

정비사업에서 보존과 개발은 딜레마다.

서울은 정비사업을 진행했다가 뒤늦게 해제(사직2구역)하거나 소유주들의 요구로 건물 존치를 철회(세운지구 내 을지면옥)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반면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유럽을 중심으로 역사 문화 보존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일부 개발하는 식으로 도시 경쟁력을 키운 사례가 많다.

성곽, 성문, 궁전 등 역사문화유산이 위치한 곳 인근은 용적률을 낮게 제한하고 이밖에 생활유산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부분적으로 건물을 헐어내는 수복형 재개발을 이용하곤 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1967년 고도시의 도시경관과 도시구조를 보존하기 위해 고도보존법을 제정해 창문 교체, 지붕 개조 등 법적으로 모든 건축적인 부분과 앙상블(조화)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거의 200년 동안 건물들이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레노베이션을 하고 싶은 건물 소유주는 시 정부에 건축 변경 검토 및 승인을 받으면 일부 재정적 지원도 받는다.

비엔나도 1972년 빈 보호지구법을 제정해 특색 있는 구역을 보호하고 있다. 건물 외관이 우선 보전대상이며 보전지구 내 건축물 신축 시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스페인 바로셀로나시는 도심 내 잔존하는 농가주택(로마시대 기원) '마시아'를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보존했다. 마시아 본 건물은 학교・주민센터・노인정・도서관 등으로 부속 대지는 학생들의 체험형 농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 그랜드센트럴 역사의 공중권을 매입 후 초고층 빌딩을 지은 매트라이프 개발 전과 후./'KB지식 비타민-초고층개발과 건물보존이 동시에 가능한 공중권' 보고서

◇ (층수) 올릴 땐 올리고!

개발이 필요한 곳에선 용적률을 높여 고층 건물을 세우는 등 혁신 설계를 활성화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의 경우 용적률을 제한하는 곳에서도 '공중권' 거래를 통해 용적률을 높일 수 있게 했다. KB지식비타민 보고서에 따르면 공중권이란 도시내 공지를 포함한 기존 건축물, 도로 등 현존하는 구조물의 상부공간에 대한 개발권리다.

이를 이용하면 인근 저층건물의 공중권을 매입해 다른 건물을 용적율이 초과한 초고층 건물로 개발할 수 있다. 가령 어느 지역의 용적률이 20층일 때, 10층짜리 건물을 가진 개발업자가 15층에 대한 권리를 매입하면 25층까지 건설 가능하다.

뉴욕의 메트라이프 빌딩이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의 공중권을 매입해 초고층 빌딩 건설에 성공했고 LA, 시애틀 워싱턴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도심재생의 방안으로 활용 중이다.

주(州) 차원에서 초고층 빌딩을 세워 주택 공급난까지 해소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연구원 세계도시동향에 따르면 미국 하와이주는 주택 부족과 부동산 값 상승으로 2025년까지 6만5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건설‧공급하기로 했다. 초고층 빌딩으로 지어 용적률을 높여 공급가격을 낮추고(1채당 3억6000만원 정도) 토지 소유권은 정부가 가진 채 99년간의 사용권을 판매한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반포주공1단지./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지금 서울은 모호한 개발과 보존만

서울 역시 보존은 엄격히 하되 개발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세계 유명 도시들이 경쟁력을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도시의 경관"이라며 "각종 역사문화유산이 있는 구시가 지역은 엄격히 보존하고 그 외 지역은 고층빌딩을 세워 휘황찬란하게 설계하는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 외 오래된 건물이나 골목 등을 섣불리 정비하면서 공간이 갖는 장소성이나 연속성이 단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로구 피맛골처럼 세대를 거쳐 역사와 추억이 공존하는 곳들에 고층 빌딩과 비싼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과거와 단절시켰다는 지적이다. 인사동 역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정비한다고 도로를 넓히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보존에 대한 원칙이 모호하고 개발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개발을 해야 할 곳엔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15~20년 전만 해도 성냥갑 아파트에서 탈피하자며 각종 혁신설계를 유도하더니 지금은 집값이 오를까봐 다시 설계를 하향평준화하고 있다"며 "미래 도시경관을 생각해서라도 규제를 완화하거나 일괄적인 계획, 종합적 가이드라인 하에 다양한 혁신설계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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