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표 대책'(2·4대책)이 나온지 한 달여 만에 풍랑을 맞았다. LH 직원의 땅투기 의혹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공공'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2·4대책은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주도' 정비사업 추진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는 여전히 2·4대책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사업주체인 LH에 땅과 건물을 통째로 맡길 토지주나 건물주들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입법 여부에 관계없이 추진 동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공공주도 정비사업을 통한 33만여 가구 공급계획 또한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 '33만 가구 공급' 핵심은 'LH 직접시행'
변창흠 국토부장관은 취임 후 첫 부동산대책인 2·4대책에서 오는 2025년까지 '공공주도 정비사업'을 통해 수도권 및 지방광역시에 총 33만2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13만6000가구,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역세권 12만3000가구 ▲준공업지역 1만2000가구 ▲저층주거지 6만1000가구) 19만6000가구 등이다.
이들 사업은 지난해 8·4대책에서 나온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보다 공공의 권한을 한 층 더 높인 게 특징이다.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이 LH나 SH 등 공공이 '참여'해 사업을 주도하는 방식이었다면 2·4대책의 핵심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방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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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책은 '빠르게'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시작했기에 LH가 사업을 주도할 수 있게 많은 권한을 부여한 셈이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LH가 감정평가, 분양계획 등을 주도하고 시공사 선정 권한 정도만 주민들에게 남긴다. 시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소유주들은 토지소유권을 LH에 넘기고 우선공급권을 부여받는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도 예정 지구로 지정되고 1년 이내에 토지주등소유자 3분의2가 동의하면 신속 인허가(패스트트랙)를 통해 LH 등이 사업을 일사천리로 이끌어간다.
공공주도 정비사업에 공공택지(26만3000가구) 공급 계획까지 합하면 정부가 2025년까지 용지를 확보하겠다고 공언한 전국 83만6000가구 중 71.1%(59만5000가구)는 LH 등 공공기관이 짓는 셈이다.
◇ 안 그래도 거부감 크고, LH 조직 변화가능성까지
가뜩이나 공공의 권한이 막대해 거부감이 컸던 공공주도 정비사업이 사업주체인 LH의 신뢰 추락으로 원만하게 진행될지 미지수다.
앞서 정부는 2·4대책을 통해 기존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 추진 단지도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방식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장에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공공재건축 컨설팅을 받았던 광진구 중곡 아파트 등 일부 단지들은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방식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 공급량이 '터무니없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부는 공공재개발 공모 참여율(25.9%) 등을 감안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공급규모를 13만6000가구로 추산했는데 공공재개발에 비해 주민들의 호응이 낮다는 평가다.
여기에 LH 사태까지 터지자 곳곳에서 '공공을 뭘 믿고 맡기느냐'는 반감은 더욱 커졌다. 8·4대책에서 흥행몰이를 했던 공공재개발조차 주민들 사이에서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4대책을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국토부, 여당 등의 추진 동력 약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지난 12일 사의를 표명했고, 관련 법안은 같은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2·4대책 회의적…"공공 역할 최소화"
정부는 그럼에도 2·4대책을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공공이 주도해서 민간의 사업영역을 주도하려면 공공에 대한 신뢰와 사업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번 LH 사태로 신뢰가 깨지면서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셈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주민 동의가 필요한 사업이라 계획대로 주택이 공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도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신뢰가 밑바탕돼야 한다"며 "LH나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근절 방안, 공공의 권한 분산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론 '공공'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비사업은 사업 주체는 민간이고, 공공이 중간에서 조합 비리, 내분 등을 중재할 수 있도록 조언, 견제 역할만 하는 게 주택공급에 있어 중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서울 강동구 천호1구역의 경우 재래시장과 집장촌 밀집지역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했는데 SH가 공동시행자로 참여하면서 사업속도가 빨라져 3년 만에 이주까지 마쳤다"며 "이 경우에도 공공은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