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 중 하나가 '기부채납'인데요. 그중에서도 '학교 용지'가 포함된 사업지라면 더 심한 좌충우돌을 겪곤 합니다.
교육에 관련된 사항은 민감해서 위치나 공사기간 등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최근엔 학령인구 감소, 임대 및 분양 확보 등에 따라 학교 기부채납이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 분위기입니다.
학교 줄게 아파트 좀 (올려)다오
기부채납은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시 부지의 일정 부분을 임대주택, 학교부지, 도로 등으로 '기부'하면 건폐율, 용적률 등의 제한을 완화해주는 제도인데요.
이중에서도 학교부지는 대표적인 기부채납 방안이었습니다.
정비사업에 따라 늘어나는 취학 인구에 대해 개발시행자가 기부채납 방식으로 학교를 마련하는거죠. 아파트를 지으면서 학교도 함께 신설하거나 기존에 있던 학교를 옮겨서 짓는 식인데요.
지역 입장에선 학교가 생기고 정비사업 조합 입장에선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윈윈'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학교 부지가 정비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최근 강제전학 이슈가 있었던 서울 서초구 반포중학교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74년 개교한 반포중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지구에 포함돼 기부채납 방식으로 재건축하기로 했는데요. 조합이 아파트 재건축 시기와 함께 공사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휴교 시기를 앞당기려고 하면서 갈등이 커졌습니다.
재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가야할 위기에 처하자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발했고 결국 교육청은 모든 재학생이 졸업하는 2024년 휴교하도록 휴교 시점을 1년 늦췄습니다. 이 단지는 여러가지 문제로 소송전이 있어 사업이 지연돼 왔는데요. 반포중 휴교 지연으로 인해 재건축 사업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도 지난 2020년 단지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신설하는 계획이 교육부 동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기부채납 방식의 세부사항을 변경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적 있고요.
임대·분양 먼저…찬밥된 학교 기부채납
여기에 학령 인구 감소, 임대 및 분양 수요 증가 등이 맞물리며 학교 기부채납이 점점 찬밥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학생수가 줄어들자 교육청에서 학교설립계획을 축소하면서 학교 대신 아파트를 짓는 사례도 나오고 있는데요.
경기 안양 평촌자이아이파크는 단지 내 학교설립계획이 취소되면서 학교용지였던 곳에 아파트 100가구를 추가로 짓게 됐고요. 평촌어바인퍼스트도 학교용지에 304가구를 추가로 조성합니다.
학령인구가 줄자 신설계획을 취소하고 기존 학교를 증축하는 식으로 바뀐건데요. 조합원 입장에선 이득입니다. 분양 수익을 더 낼 수 있으니 그만큼 분담금을 줄일 수 있거든요.
정부 차원에서 임대주택 공급을 권장하기도 하는데요. 서울시는 2017년 하반기부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지에서 학교부지를 기부채납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했습니다.
당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정비계획안 심의과정에서 학교부지 마련을 놓고 서울시와 서울교육청이 대립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조합이 학교 3곳을 기부채납하기로 하면서 임대주택 확보가 어려워지자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유도하면서 잠실주공5단지의 정비계획안은 상당 기간 진통을 겪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듯 합니다. 정부가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각종 공공정비사업 정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죠.
저출산과 정부의 정책방향이 맞물리면서 기부채납 트렌드도 바뀌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학교를 새로 짓지 않고 기존 학교에만 의존하다보면 향후 정비사업 완료 후 유동인구가 늘었을 때 뒤늦게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