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주택은 소비자들이 '그 가격으로는 사지 않겠다'는 주택입니다. 미분양 중에도 분양가를 낮추니 바로 완판 된 사례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 업계의 미분양 주택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SNS에서 이처럼 언급했죠. 정부가 무작정 도와주지는 않겠다며 사업 주체들이 가격 인하 등 자구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며 선을 그은 건데요.
건설사들은 최근 주택 시장이 빠르게 침체하고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고 있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선제 대응에 나서야 건설사 줄도산 등으로 인한 실물 경제 타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집값도 떨어지고, 미분양 주택도 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죠. 그런데 요즘 분양하는 단지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분양가가 이전보다 되레 높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집이 안 팔린다며 아우성치는데 왜 분양 가격은 이토록 꿋꿋한 것일까요.
"원자잿값·금융비용에 분양가 인상 불가피"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최근 발표한 '1월 말 기준 민간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격은 1571만원으로 전월(1546만원)보다 1.6% 정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역시 3063만원으로 전달보다 2.85%가량 상승했고요.
올해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로 하락 폭이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집값 하락세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6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는데요. 또 시장이 침체하다 보니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해 말 기준 6만 8000가구를 넘어서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요. 이처럼 '시세'는 내리고 '수요'는 줄어드는데 분양가는 되레 오르는 겁니다.
분양가는 건설사나 시행사, 정비사업 조합 등 사업 주체들이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 등 분양 원가를 바탕으로 정하는데요. 시세와 금리,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건설사 등 사업 주체들이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요. 그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고 있는 것은 바로 원가 상승입니다. 건설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오르니 건축비 등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건데요. 실제 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를 올리겠다는 건설사와 안 된다는 조합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죠.
여기에 더해 고금리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도 분양가 인상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처럼 집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나니 어찌 보면 분양가가 오르는 건 언뜻 당연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품이 그렇듯 주택도 원가 그대로 가격이 정해지는 건 아니겠죠. 투자자나 사업 주체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산업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 상황이나 시세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의 분양가를 책정합니다.
결국 가격 책정에 불가피한 원가 요소를 제외하면 사업 주체 입장에서는 이 수익을 어느 정도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분양가 수준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사업 주체들이 과하게 수익을 챙겨가느라 실수요자들의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겠죠.
고분양가 '외면'에도…"조합 분담금에 낮추기 한계"
지난 수년간 부동산 활황기에는 집값이 쑥쑥 오르니 분양가를 올려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분양가를 너무 올리면 수요자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침체기에는 분양가에 대한 민감도가 더욱 커지기도 하고요.
미분양이 날 경우 사업 주체들은 수익은커녕 손해를 볼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건설사나 조합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을 건데요. 수익을 위해 가격을 무작정 올렸다가는 되레 손해를 볼 수 있으니 '적정 수준'의 집값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 수도권에서 주목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다소 높은 분양가를 책정했다가 미분양 우려 등으로 곧장 할인 분양에 돌입한 단지가 나왔는데요.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평촌센텀퍼스트입니다. 이 단지는 1·2순위 청약에서 경쟁률(0.30 대 1)이 1 대 1을 밑돌며 청약률이 저조해지자 10% 할인 분양을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단지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제 가격'에 팔기가 어려우니 할인을 해서라도 파는 경우가 늘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할인분양을 하면 자칫 안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도 있는데요. 수요자들이 집이 안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더욱 기피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수요자들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가격을 정하면 될 텐데, 왜 그렇지 않을까요.
업계에서는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경우 가격을 낮추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조합은 차라리 초반 미분양을 감안하더라도 분양가를 다소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사업 주체 입장에서만 보자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준공 전 미분양, 즉 악성 미분양이 되기 전에 물량을 소진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른바 '완판'이 되기까지 비용이 더 들기는 하겠지만 큰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이유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주택 시장 침체기에도 수요자의 움직임에 따라 할인분양을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분양가를 낮추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비 사업의 경우 분양가를 낮추면 낮출수록 조합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라는 점에서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일단은 약간의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일정 기간 내에 팔릴 수 있을 만한 가격을 선택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선 줍줍서 완판… '수요 여전' 분석도
일각에서는 아직 가격을 무작정 낮출 만큼 시장이 침체하지는 않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규제 완화를 한 덕분이기도 하겠고요. 서울의 경우 수요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지난해 말 나란히 분양에 나서면서 주목받았던 서울 대단지 아파트들이 있죠. 서울 성북구 장위자이 레디언트와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입니다.
두 단지 모두 첫 분양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이후 무순위 청약이나 선착순 청약 등을 통해 완판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분양가가 비싼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수요는 있었던 셈입니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광명시의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 역시 선착순 분양 진행 결과 계약률이 95%를 넘어서기도 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이나 입지가 괜찮은 수도권에서는 아직 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당장 사업 주체들의 수익을 줄여가며 처음부터 분양가를 수요자들의 마음에 쏙 들게 낮출 필요는 없을 거고요.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는 할인 분양을 결정하는 경우도 아직 흔하지 않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미분양이 16만 가구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는데요. 이후 침체기가 이어지면서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이른바 '눈물의 할인분양'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분양가를 낮추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볼 게 뻔하니 분담금을 더 내야 하는 조합들도 할인 분양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 등 사업 주체들이 이런 점을 고려해 더욱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난 주택 활황기에는 집값이 계속 오르니 사업성 등을 신중하게 따지지 않았던 면이 있다"며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뀐 만큼 앞으로는 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기대 이익을 줄이는 등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