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경기도 동탄 등에서 잇따라 확산하는 데다가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국회는 정쟁을 하느라 관련 논의를 뒤로 미뤄 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최근 경쟁적으로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마저도 이견을 보이고 있어 힘을 모으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다급해진 정부·여야, 줄줄이 관련 대책 발표
정부와 여당은 어제(20일) 국회에서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당정협의회'를 열고 최근 더욱 확산하고 있는 전세사기 대책을 논의했다. 임차인의 거주 주택 낙찰 시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과 경매 시 우선매수권 부여를 검토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범정부 특별 단속을 실시하고 있으나 피해자 구제나 주거 안정 확보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밀도 있게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한 경매·공매 유예 방안 등을 집중 논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중 은행권 및 상호금융권 등에서 보유 중인 대출분에 대해 20일부터 즉시 경매를 유예하도록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19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세 사기 피해자 구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안 등을 내놨다. 임대차 종료 후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 방식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이다.
대책은 땜질…피해자 구제 실효성 떨어져
정부와 국회가 이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전세사기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뒤늦은 대책으로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우선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련 부처는 지난 2월과 3월에 각각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해 뒤늦게 대책을 보완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놓은 대책들의 경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 거처 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애초 정부는 지난 2월에는 긴급 지원주택 6개월 월세를 선납하도록 했는데 민원이 이어지자 이를 매월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하지만 긴급 거처로 활용할 수 있는 주택이 많지 않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주거 수준과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주거 지원 주택 238가구를 마련했지만 지난 17일 기준으로 입주한 세대는 8가구(3.3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갈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저리 대출 역시 이용 실적이 저조하다. 천준호 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3월 이 대출을 이용한 사람은 단 8명에 그쳤다. 정부가 연 1% 수준의 저리대출에 예산 1660억원을 편성했지만 이 가운데 9억원을 집행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의 경우 대출 자체가 부담인 데다가 임차인 대항력 유지를 위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해야 하는 상황 등을 간과한 대책이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대환대출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경매 유예(중단) 방안의 경우 뒤늦은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미 많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실제 인천시는 미추홀구에서 일어난 전세사기 피해 가구 2479가구 중 임의경매에 넘어간 가구 수는 1523가구(61.4%)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미 매각된 가구도 87가구에 달한다.
'공공매입' 방안 두고 이견…원희룡 "무슨 돈으로?"
여기에 더해 여야는 특별법에 담길 피해자 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어 법안 통과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특별법의 핵심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전세 보증금 채권을 인수해 전세사기 피해금액을 우선 보상하는 식의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다. 반면 여당은 이런 공공매입 방식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원 장관은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주택을 공공이 매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무슨 돈으로 (매입하고), 가격은 누가 정하냐"며 "할인하면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고, 비싸게 사면 납세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주택 공공매입은 민사 법률 관계상 우선변제금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매수 대금이 선순위 채권자들한테 가게 돼 있다"며 "돈이 피해자에게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