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는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대출 이자를 깎아주고 주택 청약에서 당첨도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기사: "아이 낳으면 내집마련 유리해요" 신생아 특공 등 연 7만가구(11월30일)
'내집마련'을 노리는 신혼부부와 예비 부모들에게 기회가 될까? 정부는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를 앞세우고 있지만, 속내에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표심 공략 의중도 있어보인다. 다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혼·기출산 세대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은 숙제거리다.
'청년 주담대' 이자 깎아주고 '신생아 특공' 7만가구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과 '청년 주택드림 대출'을 선보였다. 결혼·출산·다자녀 등 전 생애주기에 걸쳐 혜택을 부여하는 주거지원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인 만 19~34세 무주택자는 월 100만원, 최대 4.5% 금리를 제공하는 청약통장에 가입할 수 있다. 1년 이상 납입 후 청약에 당첨될 경우 전용 대출을 통해 분양가 6억원,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대해 최저 2.2% 금리로 최대 40년간 분양가의 80%까지 빌릴 수 있다.
청약 당첨 후 결혼하면 0.1%포인트, 첫째 아이를 낳으면 0.5%포인트, 둘째 이상 낳으면 1명당 0.2%포인트 우대금리(감면)를 받을 수 있다. 대출 금리 하한선은 연 1.5%다. ▷관련 기사: 청년 '2%대 주택대출' 어차피 서울선 못 쓴다…'6억 기준' 갑론을박
또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신생아 특별·우선 공급 연 7만가구를 골자로 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등 개정안을 입법(행정)예고 했다. 2세 이하 자녀(태아 포함)가 있는 가구를 위해 공공분양(뉴:홈) 특별공급과 공공임대 우선 공급을 연 3만가구 신설한다. 민간 분양 우선 공급도 연 1만가구 이뤄진다.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고자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많았던 만큼 '결혼 페널티'도 개선한다. 부부가 중복으로 당첨되더라도 이미 신청한 건 유효 처리한다. 배우자가 결혼 전 주택을 소유하거나 청약에 당첨된 적이 있어도 생애 최초나 신혼부부 특공을 신청할 수 있다. 맞벌이 기준도 월평균 소득 200%로 상향되고 이에 적용되는 추첨제도 신설한다.
민간 분양 다자녀 특별공급 대상은 공공분양과 동일하게 3자녀에서 2자녀 가구로 확대한다. 3명(30점)부터 적용되던 자녀 수 배점도 2명(25점), 3명(35점) 등 변경된다.
결혼할 때 5억원 받아도 증여세 0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15개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이 개정안에는 혼인 증여재산 공제가 신설돼 혼인신고 전후 2년, 총 4년 이내에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증여받을 경우 1억원까지 공제된다. 출산 증여재산 공제의 경우 자녀의 출생일로부터 2년 이내에 최대 1억원 공제된다. 혼인 및 출산 통합공제 한도는 1억원이다.
현재는 직계존속 기준 10년 이내 5000만원(미성년자는 2000만원)까지 공제된다. 현재 30대 초반인 사람은 최대 총액 1억4000만원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개정안을 통해 총액이 2억4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직계존속 외 친족(이모·삼촌 등)으로부터 증여받는 경우 추가로 4000만원까지 공제된다. 보편적인 케이스는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양가에서 5억6000만원까지 증여세 없이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중산층의 경우 자녀가 결혼할 때 2억~3억원 정도 증여하는 게 일반적인데 5000만원 기준이 현실성이 부족했다"며 "법의 사각지대가 양성화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무법인 다솔 엄해림 세무사는 "결혼을 앞두고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법 개정의 혜택을 받고자 증여 시점을 내년 초로 미뤄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출산 증여재산 공제의 경우 혼인신고 후 2년이 지난 사람도 출산을 통해 2년의 공제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자녀 세액공제액이 1명 15만원, 2명 35만원, 3명 65만원으로 확대된다. 공제 대상에 손자녀도 추가된다. 엄 세무사는 "출산 의사결정을 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액수는 아니지만 가계 부담 감소에 도움은 될 것"이라며 "부모 없이 조부모가 양육하는 경우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명문화한 점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출산하면 최저 1.6%로 최대 5억원 빌려줘
정부는 내년 1월 '신생아 특례대출'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8월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연 소득 1억3000만원 이하인 무주택가구가 대출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하면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저 1.6% 금리로 최대 5억원의 주택 구입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추가 출산 시 0.2%포인트씩 추가 인하 혜택도 주어진다.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보증금 5억원 이하 수도권 주택에 대해 3억원까지 빌려준다. 최저 금리는 1.1%이며 추가 출산 시 0.2%포인트씩 더 깎아준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특례보금자리론 대출금리는 4.85%까지 올랐는데 신생아 특례대출은 1.6~3.3%에 불과하다"며 "전세 자금용 대출도 1.1~3.0%로 취급돼 특례 대상 가구에 해당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 연구원은 "국회에서의 국토부 예산안 통과 여부는 변수지만, 저출산과 역전세난으로 최근 가중된 주거 불안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행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고종완 원장도 "9억원 기준은 현재 아파트 매매가격을 고려할 때 현실적"이라며 "1%대 금리로 장기 저리 대출해 준다면 자녀를 둔 가정이 내 집 마련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멍도 지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도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안 분석'에서 "출산 여부를 기준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지원할 경우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출산한 유주택자 부부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2023년 출산 가구부터 적용돼 이보다 앞서 출산한 가정이 배제되는 문제도 제기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존 출산자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혜택이 지원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기존 대출분에 소급 적용해 금리를 인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가계부채도 변수다. 서지용 교수는 "시중금리는 높은데 신생아 특례대출 금리는 지나치게 낮아서 이용자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며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한도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신혼부부가 '부담 가능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빚을 많이 낼 수 있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가계부채를 계속 늘리고 있다"며 "무주택자나 취약계층에 돌아가야 할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를 빼서 신혼부부에게 주겠다고 하면 갈등 관계만을 만드는 것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