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신입 회계사들에게 '빅(Big) 4'로 불리는 4대 회계법인은 가깝고도 먼 이름이다. 시험에 합격만 하면 대부분 '삼일, 안진, 삼정, 한영' 이란 4대 회계법인에 채용돼 수습생활을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 4대 회계법인에 남아 계속해서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년 간의 수습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회계법인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수습 이후에 회계법인에서 자리를 잡더라도 상위 직급으로 갈수록 살아 남는 회계사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4대 회계법인 기준으로 보면 회계법인 직급은 주니어(스태프)→시니어→매니저→시니어매니저→디렉터→파트너의 6단계로 구분되는데, 말단인 주니어에서 회계법인의 꽃으로 불리는 파트너가 되기까지엔 빨라도 12~13년, 늦으면 20년이 넘게 걸린다.
수습회계사가 속하는 주니어 계급은 3년을 마쳐야 시니어 회계사로 올라설 수 있고, 이후에도 매니저 3년, 시니어 매니저 3년을 거쳐야 디렉터로 올라 갈 수 있다.
회계법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니어에서 시니어 매니저까지는 연차를 쌓으면 자연스럽게 승진하는 구조다. 그러나 시니어 매니저에서 디렉터로 올라설 때부터는 개별 실적 등이 반영되어 차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디렉터가 되고, 거기에서 다시 경쟁을 통해 소수만이 파트너의 대열에 올라선다. 그러는 사이 누구는 12년을 보내고, 누구는 25년의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 수습 회계사로 입사해 파트너가 될 확률 5%
20년이 걸리더라도 파트너가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 10년 내에 살아남을 것인지 튕겨 나갈 것인지가 판가름 난다.
올해 채용계획 기준으로 보면 4대 회계법인에서만 신입 회계사 880명이 수습생활을 시작한다. 4대 회계법인에서 매년 40~50명 정도만 파트너로 승진하는 점을 감안하면 수습 회계사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확률은 5% 안팎이다.
삼일회계법인은 해마다 20명 정도를 파트너로 승진시킨다. 올해 임원인사가 발표된 29일에도 21명이 파트너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240명인 삼일회계법인 신규 채용규모에 비교하면 8.7%의 승진 확률이다. 역시 24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인 삼정회계법인에서는 올해 11명이 파트너로 승진했다. 올해 기준으로 삼정회계법인에서 파트너가 될 확률은 4.5%에 불과한 셈이다.
파트너가 되지 못한 회계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4대 회계법인의 연간 이직률은 20%가 넘는다. 해마다 조직원의 20%가 조직을 떠난다는 얘기다. 대부분 10년 이내로 연차가 짧은 젊은 회계사들이다. 대형 회계법인을 떠난 회계사들은 중견·중소회계법인으로 가서 중간급 이상의 간부로 활동하거나 개업해서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회계사 경력으로 일반 기업이나 관공서에 취업하기도 한다.
# 별보다 특별한 별 '파트너'
회계법인에서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는 직급, 파트너는 어떤 자리일까. 외형상 상무라는 임원직함을 받는 걸로 봐서는 일반적인 기업체의 상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4대 회계법인 기준으로 볼 때 신입 회계사의 연봉은 4000만원 중후반에서 형성돼 있다. 파트너의 연봉은 신입의 4배에 가까운 1억5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각종 인센티브 등을 포함하면 2억원을 훌쩍 넘기게 되고, 본인의 실적에 따라 보수는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파트너에게는 기본적으로 대기업 임원들과 같이 법인에서 차량이 제공되고, 개인비서도 한 명이 붙는다. 각종 통신기기에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복지서비스는 기본이다. 차량은 파트너 승진 직후에 오피러스급 이상이 지급되지만 대형 외제차로 갈아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무급에선 기사까지는 채용하지 않지만, 전무급 이상들은 운전기사도 기본이다. 이밖에 골프회원권, 호텔연회비 등도 무상제공된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예전에는 파트너들이 대표나 윗분들 눈치보느라 국산차종으로 제한해서 탔었는데, 최근에는 흐름이 좀 바뀌었다. 벤츠나 BMW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좀 더 들여다 보면 회계법인의 파트너는 더 특별해진다.
회계법인의 파트너는 일반 기업체의 상무와는 달리 승진과 함께 회사의 공동소유주가 된다. 회계법인이 유한회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회사의 지분을 갖고 지분만큼의 경영 책임도 지게 된다. 임직원의 개념보다는 오너에 가깝다.
실제로 회계법인의 의사결정은 파트너 총회에서 하게 된다. 오너이기 때문에 매년 발생하는 소득에서 보너스로 챙겨가는 직원들과는 달리 직원들에게 분배하고 남은 것을 소유자인 파트너들이 나눠갖는 형태다.
2013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파트너 이상 임원의 비중은 삼일회계법인의 경우 전체 소속공인회계사의 0.5%, 안진회계법인은 1%, 삼정회계법인은 0.7%, 한영회계법인은 0.7% 수준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경력 회계사는 "회계사들의 초임이 낮고 업무도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회계법인에서 10년만 눈 딱 감고 고생하면 대기업보단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본다"며 "대기업에서 10년만에 별(임원)을 다는 것은 재벌가 자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만 회계사는 10년 이후에는 임원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