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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회는 왜 외국회계사 활용을 검토했나

  • 2016.08.12(금) 14:47

입김 센 회계법인과 파트너들 영향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군과 반대 흐름

한국공인회계사회(이하 한공회)가 외국회계사의 감사 보조를 공식적으로 허용해주는 안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자 국내 회계사 자격 소지자(KICPA)들의 반발이 거세다.
 
비즈니스워치는 11일 한공회 정책기획팀이 지난 6월17일 오후 2시 관련 TF 1차 회의를 열어 미국회계사(AICPA) 등을 '전문가'로 규정해 회계법인이 이들 전문가를 감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 개정안을 논의한 사실을 TF 문건과 함께 단독 보도했다. ☞관련기사: [단독]국제회계사도 감사 참여 가능
 
▲ 그래픽: 유상연 기자 prtsy201@
 
보도 직후 한공회 정책기획팀과 홍보팀, 홈페이지 건의사항 란에는 KICPA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에서 자격증을 딴 회계사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한 회계사는 "20대 청춘을 바쳐 공부해서 딴 자격의 의미가 사라졌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감사업무는 회계사 업무의 '꽃'이다. 연말 등 소위 '시즌'이 되면 몇 주 째 이어지는 야근의 고통을 호소하게 하면서도 회계사들에게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는 자부심을 주는 것이 바로 이 감사업무다.
 
그런데 TF 문건에 따르면 한공회는 회계법인이 KICPA 외 전문가도 보조자로서 감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개정안이 문건대로 통과되면 그간 자문에 그쳤던 외국회계사의 합법적 업무영역이 감사 보조 등으로 더 넓어지게 된다.
 
▲ 현행 공인회계사법과 논의중인 '전문가 감사업무 활용관련 규정 개정안' 비교.
 
공인회계사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한공회가 이 같은 논의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한공회의 회원구성 및 관리가 개별 회계사 회원보다 회계법인, 감사반 회원 단위에 맞춰 이뤄진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공회의 회원 수는 5월31일 기준 현재 1만1832명(휴업회원 제외)이다. 이 가운데 회계법인 소속으로 관리되는 회계사 회원이 9785명(82.7%)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그 중 100인 이상 대형 법인 10곳 소속이 6134명(62.7%)으로 과반을 넘는다. 나머지 회원은 감사반 소속(1369명,11.6%), 일반개업 회계사(678명, 5.7%)의 순이다.
 
◇ 빅4 회계법인 입김 작용했나  
 
이 같은 회원구성은 전문가단체에서도 독특한 모습이다. 이는 회계사의 고유업무인 감사가 최소 3명 이상이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구조가 개인 회계사들의 목소리가 한공회에 그대로 전달·반영되기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한공회에 견줘 개인 회원의 파워가 크고 회원의 '품위 유지 위반' 등에 징계가 엄격한 대한변호사협회의 경우 '국제변호사' 등 비자격자의 업무와 변호사 명칭 사용 등을 강력하게 제재한다. 앞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비서실장 나승기 씨가 '변호사/국제변호사'로 소개되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즉시 나 씨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변협은 이 사건 이후 '외국법자문사법'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 추진 중이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변호사단체는 미국변호사를 '국제법자문사'로 표기하도록 하고 이를 어겨 국내 변호사로 사칭하면 바로 고발하는 반면 한공회는 외국회계사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외국회계사의 감사업무 투입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지만 관련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공회가 소속 회원(회계법인)을 징계한 사건은 한 건도 없다.
 
한공회는 외국회계사의 KICPA 업무범위 침해나 사칭 등 문제를 제재하기보다 회계법인이 이들을 떳떳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제가 된 이번 논의사항은 회계법인과 그를 대표하는 고위 임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회계법인에 대한 규제 완화'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현행 공인회계사법상 회계법인은 감사업무 일체를 KICPA 외 전문가에게 맡길 수 없다. 한국이 미국, EU 등과 체결한 FTA 규정 등에 따라서도 감사업무는 자국에서 자격을 취득한 공인회계사만이 법적 책임을 지고 수행할 수 있다. 
 
◇ 빅4, 외국회계사 983명 고용
 
는 개별 KICPA에게는 고유 업무영역을 보장해주는 이익으로 작용한다. 국가 단위에서도 자국의 감사시장을 보호한다는 면에서 이점이 있다. 하지만 회계법인에게는 고용한 외국회계사 등 전문가를 경영적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하는 규제로 작용한다. 이미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이 고용한 외국회계사는 KICPA 동시 자격자를 포함해 983명에 이른다.
 
더욱이 감사업무는 업무강도 대비 보상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KICPA들 사이에서도 기피 분야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감사가격 덤핑 등에 따른 부작용으로 보고 있으며 청년회계사회는 '지정감사제 추진'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공회는 감사가격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찾는 대신 저가감사 수주라는 현실을 반영해 감사업무의 일손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정책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도진 중앙대 회계학과 교수는 "한공회가 암묵적으로 이뤄져 온 회계법인의 외국회계사 감사 업무 투입을 투명화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외국회계사의 감사 참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제도권에 넣어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 차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자격증 취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외국회계사에게 KICPA의 감사 업무를 그대로 맡긴다면 감사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감사 보조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회계투명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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